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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 보조작가 김국시의 생활 에세이
김국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평점 :
한 번은 책을 받자마자 금세 읽었고
한 번은 서평을 적기 위해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땐
맨 앞장 행운의 편지를 보자마다 빵 터지고
어떻게 이런표현을 쓸 수가 있지 놀라면서 킥킥킥,
휘핑크림의 달콤한 맛이었다.
다시 읽을 땐 만년 손님이었던 보조작가로서의 고단함, 막내로서의 설움, 비정규직의 씁쓸함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중후하고 쌉쌀한 커피의 맛이 느껴졌다.
프랑소와 엄님의 추천사에 적힌 아인슈페너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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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작가도 여러 분야이다. 난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다큐팀 막내작가, 교양프로그램 서브작가, 드라마 보조작가, 아침뉴스팀 해외토픽 작가. 뜬금없지만 사람의 에세이집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진득하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냉탕, 온탕, 미지근한 탕, 찻물 우러난 탕, 이런저런 탕탕탕을 떠도는 경박한 모양새다. .. 여기저기 깔짝대다 둘러보면 같은 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벅벅 때 빼고 광내고 있는데, 나는 '아아... 아직 때가 안 불었어.'하며 눈알을 굴리며 앉아 있다. 쪼그라들어가는 손끝만 매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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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조작가로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일은, 수영을 못하는데 태평양 한가운데 빠진 것쯤으로 볼 수 있겠다.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해야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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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건강 따위 배려하지 않고 설탕에 몸을 던진 애들. '나는 달다. 먹을 테면 먹어라' 하고 손님이 오든 말든 찜질방 단골들처럼 무신경하게 누워 있는 애들, 그런 것들이 좋다. 촌스러울 만큼 제 모습에 솔직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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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이 프리랜서 작가를 가족처럼 대하는 유일한 시간은 일할 때다. 일할 때만 되면 한집 사는 가족처럼 삼시 세끼를 함께 먹으며 낮이고 밤이고 동고동락하려 한다... 혈연보다 징한 금연으로 엮여 있어서 간절히 끊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관계, 가족하지 일하자는 말은 네가 무상으로 희생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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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나 되집기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다시 떠올려본다. 그 생각의 찌꺼기를 그러모아 퍼즐을 맞춰보면 나라는 사람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 대강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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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이 정도의 삶을 위한 거였다. 고통스러워하며 구구단과 알파벳 철자를 외우고 '이건 앞으로 내 인생에 절대 필요하지 않을거야' 생각하며 수식을 적어 내려간 시간들이. 그게 모두 이 정도의 삶을 위한 거였단 것 알았다면 공부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 적당한 크기의 집에 털이 부숭부숭한 고양이 두 마리가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먹고 싶을 때마다 맥주캔을 따 꼴꼴 따라 마시며 안주는 마음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낮과 밤이라면. 이 시간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면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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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연히 편의점에 들렀을 때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보게 되면
김국시 작가님이 떠오를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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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겨울, 나는 예상과 달리 어디에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높이 자라지도, 눈에 띄지도 않은 채였다. 아무래도 나는 전생에 이끼였던 것 같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해 곧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는데 여전히, 조용히,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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