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것은 쉬운 것인가?
편견은 쉬운 것인가?
이 둘은 뺀 온전한 소통이 있는가? 단순한 소통 말고 말이다. 저것들을 지나쳐야 치울게 생기고 새로운 희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성모마리아가 되기 이전엔 말이다.
저들을 온전하게 지켜주기 위해선 기다림 시련 인내의 과정이 필요 할것이다. 위의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가치없는 '그냥'일 뿐이다.
이왕이면 가치있는 '그냥'으로 살아서 나쁠 것 없는게 내가 서있는 '지금의땅'이라 이름 지어주고 싶다.


오만함으로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욕구.
이 욕구에서 나오는 당당함은 어느 쪽 시선으로 편견을 두느냐에 따라 매력으로, 실망으로 갈리고 있었다. 그러하다면 편견은 어디서 오는가? 누군가를 가르키 길 원하는 욕구에서 오는가? 누군가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가?
이 또한 어느 쪽 시선을 편견에 두느냐에 따라 매력으로, 실망으로 갈리고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오만함으로 에너지를 창의를 토해 냈고 타인에 대한 편견으로 몰입하여 생각하며 토해낸다.
또는
타인의 오만함에 대해 창의를 에너지를 토해 냈고
자신에 대한 편견에 몰입하여 생각하며 토해낸다.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하여
토해낸 것들이 차곡차곡 넘쳐흐르는 모습에
'역겹다. 신기하다. 어리둥절하다. 이상하다. 당췌 모르겠다. 믿을 수 없다.' 로 중얼거리거나 서로 속닥이거나 내지르면서 치우기를 반복하며 정리를 하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 결과
오만은 편견에게 다시 생각할 여유를 주기도 하였고
편견은 오만에게 기다릴 수 있는 인내를 주기도 하였다.

오만과 편견이 없었다면 그들의 연결 줄은 생기지도 않았을 터이니...
참으로 중요한 오만과 편견이구나 싶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을 읽고 난 뒤 J ㅇ ㅠ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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