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와 교육 -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 2025년도 대한민국학술원 선정 교육부 우수학술도서
모르데하이 고든 지음, 조나영 옮김 / 살림터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상임이사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은 정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정신의 삶] 등 아렌트의 저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아렌트는 교육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가졌을까? 모르데하이 고든을 포함한 9명이 쓴 논문을 모은 『한나 아렌트와 교육: 우리의 세계에 새로움을 더하다』는 이에 대해 답하고 있다. 논문 중 주목을 끈 것은 아렌트의 보수주의적 교육관과 협동학습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를 간략히 소개해 본다.

모르데하이 고든은 보수주의를 ‘과거에 성공적으로 확립된 관습, 가치, 그리고 제도를 보존하려는 태도’로 규정하고, 아렌트가 보수주의와 접점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즉 아렌트는 ‘첫째 권위의 역할이 부정적이고 제한적이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긍정적이고 건설적이라고 보았으며, 둘째 권위는 전통과 종교 모두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고, 셋째, 권위가 정치 구조에 지속성, 연속성, 그리고 영속성을 부여하는 원칙이라 주장했으며, 넷째, 권위는 설득과 합리적 토론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의 권위와 교육적 보수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논의와 연결된다. 아렌트는 「교육의 위기」라는 저작에서 195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교육적 권위의 위기가 미국만의 특수함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핵심은 권위와 자격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교육자의 권위와 교사의 자격은 같지 않다. 자격의 기준이 권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최고의 자격은 결코 그 자체로 권위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교사의 자격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치는 데 있지만, 교사의 권위는 세계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데 달려 있다.”

한마디로 교사 자격을 가진다고 해서 교육자로의 권위가 자동적으로 부여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말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권위는 어떻게 부여될 수 있을까? 핵심은 책임이다. 아렌트는 ‘어른과 아이가 동등하게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어른들이 잘못된 세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때이다. 모르데하이 고든은 미국사회에서 마약과 알코올을 남용하는 어른들을 지목하였지만, 나는 한국사회에서는 입시경쟁교육과 시험능력주의에 포획된 어른들, 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 남용을 허용하는 어른들 그리고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보장하지 않아 온 역대 정부와 거대 양당의 문제를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렌트의 권위 개념은 교육과 전통에 대한 아렌트의 독특한 접근으로 이어진다. 아렌트에게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아이들의 새로움과 혁신적인 것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인간을 위한 안정된 공간으로 세계를 구할 것인가?’라는 것으로, 이는 전통에 대한 태도와 연결된다. 아렌트는 전통을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고 인류 문명에 통일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이음새로 보지 않고, 전통을 그 자체로 단절과 균열 그리고 발명품과 같은 혁신’으로 여겼다. 아렌트는 발터 벤야민을 인용하여 교육자는 학생들이 ‘과거의 심연으로 내려가 결정화된 유물을 찾는 진주조개 채취 잠수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전통은 ‘우리가 현재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작을 창출할 수 있는 도구’로 보았다.

아렌트의 관점에서 학교를 본다면 ‘학교의 기능은 아이들에게 세계란 어떤 곳인지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지 단지 삶의 기술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게’ 된다. 또한 ‘권위라는 개념을 통해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것은 아이를 어른으로 대할 수 없으며,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렌트에게 교육은 ‘해로운 것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동시에 그들이 새로움을 실현할 가능성을 보전하기 위해 세계와 아이들 모두를 책임지는 일’이다.

권위에 대한 아렌트의 견해는 자칫 보수적인 교육관을 옹호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주의를 곧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과 맞물려 있다. 민주주의가 질서 없는 혼란의 도가니를 의미하지 않듯이, 교실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권위가 자격증이나 지위로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며, 교사가 세계에 대해 책임을 질 때 형성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교사의 정치기본권의 보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정치기본권이 없는데 어찌 온전한 교권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귄위와 전통에 대한 아렌트의 태도는 협동학습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협동학습을 비판한다니 아연실색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녀, 학생 또래 간의 협동이 발달에 중요하다고 배우고 실천해온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아렌트는 어떤 맥락에서 협동학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것일까?

에두아르도 두아르테는 협동학습이 20세기 후반 미국의 미네소타대학교와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파생되었음을 추적하면서, 협동학습의 전제가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즉 ‘다른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협동학습 이론가들이 그것이 왜 쉽고 명확하게 드러나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협동학습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실패에 대해 회피하게 된다.

두아르테는 협동학습 이론가들이 비고츠키의 이론에서 근거를 찾아 ‘반성적 사고를 내면화된 사회적 대화로 이해하여, 사회적인 언어 능력을 우선시’하게 되고, ‘내적 발화(말)은 의사 소통이나 사회적 발화(말)을 통해 발달하니, 진정한 학습이란 학생들이 공동으로 작업하고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두아르테가 지적하는 것은 내적 발화가 사회적 발화를 통해 발달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발화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즉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도록 하여 그들을 발달의 초기단계에 머물게 하는 학습형태’이다. 이는 사유하는 능력의 발달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렌트가 사유와 행위를 구분한 것과 관련된다. 두아르테는 아렌트는 1972년 민주주의 이론가 맥퍼슨과의 토론에서 “사유는 행위가 같지 않습니다. 그것은 행위와 반대로, 참여하고, 수행하는 것에서 상당 부분 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주장한 것을 소개한다. 아렌트는 혼자서 사유하는 것과 여럿이 행위 하는 것이 같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자기비판을 하면서 “나는 관조적 삶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채, 관조적 삶의 관점으로 여전히 전통에서 활동적 삶이라고 불리는 것에 주목 하였다”고 고백하였다.

두아르테는 아렌트가 [정신의 삶]에서 ‘사유는 물러남을 통해 일어나며, 활동적인 삶이 중단되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점을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에 주목한다. 아렌트는 ‘사람이 가장 덜 외로운 순간은 홀로 있을 때이며, 사유의 장소로 물러났을 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교육에 적용한다면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위해 사유하고 관조하는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해 진다. 그런데 ‘협동합습의 또래-매개 모델은 구조적으로 학생들이 무리에서 물러나도록 그들을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두아르테가 아렌트의 행위와 사유를 구분하고 행동적 삶만이 아닌 관조적 삶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에 기초하여 협동학습에 대해 비판적인 고찰을 한 것은 향후 진지하게 논의할 만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교육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협동학습은 생각처럼 효과를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학습자 간의 소외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둠이 다른 모둠보다 더 높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모둠 내에 능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친구들을 배제하거나, 혹은 누군가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일이 실제로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본성을 함께 갖게 되었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을 조성하는 가이다. 만일 우리가 야만적인 경쟁교육체제를 바꿀 수 있다면, 혹은 마을학교나 대안학교처럼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이라면 협동학습도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사유하는 능력을 가지려면 때론 반복된 무의미한 행위로부터 때론 거리를 둘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특히 문제풀이 훈련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사유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책을 통하여 좀 더 교육과 사회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