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안교육 - 미래를 위한 교육적 대안의 전망과 가능성 ㅣ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번역 총서 13
넬 나딩스.헬렌 리즈 엮음, 심성보 외 옮김 / 살림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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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사)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

 

정의롭지 못한 세상, 불평등한 세상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부정의와 불평등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다. 진짜 원인은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주저하기 때문이다.

왜인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유지하려 하고, 낯선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경로의존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결과 구래의 낡은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이들이 소수이지만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 이런 이들은 배척당하고, 심지어 잔혹한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결코 진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변화를 꾀하려 한다면 기존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창조의 원리이다. 교육이 다수 민중에게 가난의 대물림의 사슬이 되고, 소수 기득권 세력에게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도구가 된 현실이다. 이 현실을 바꾸려면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해야 한다.

바로 이를 위한 중요한 영감을 제시하는 책이 번역되었다. 존 듀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넬 나딩스가, 헬렌 리즈와 함께 엮은 『세계의 대안교육』이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무려 30개의 논문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번역자도 11명이나 참여하였다. 이 중 필자의 관심을 끈 두개의 논문을 중심으로 책에 대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논문은 클래런스 졸더스마의 ‘대안교육을 위한 신경과학의 가능성과 위험’이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가 늘어나면서 신경과학의 성과를 교육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가능성과 위험 모두를 제공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이란 무엇일까? 대표적인 것이 ‘마음 챙김’이다. 마음 챙김에 대한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전반적 웰빙의 증가, 두려움에 대한 통제, 더 나은 실행 통제, 스트레스 감소 및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관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번에는 위험성을 살펴보자. 저자는 ‘과학적 발견을 구체적인 교육적 실천에 적용함에 있어서 둘 사이의 간격이 매우 넓음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성급하고 상업적인 시도,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경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졸더스마는 이른바 ‘신경 신화’를 경고하는데 여기에는 ‘우리는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설, 우뇌와 좌뇌는 분리된 사고를 한다는 설, 뚜렷하게 다른 학습 스타일이 있다는 주장, 단순한 신체움직임이 학습의 향상을 향상 시킨다는 것, 모차르트가 IQ를 높인다는 것’등이 포함된다. 이런 사이비과학은 한국에도 널리 퍼져있으며 사교육시장을 통해 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교육에 적용되는 것을 지적한다. 특히 ‘증거 기반 강의와 표준화된 성취 테스트를 옹호하는 것’에서처럼 ‘신경과학을 포함한 과학적 연구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과학과 과학자는 사회와 분리될 수 없기에, ‘남성적 편견을 포함하는 구조적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ADHD인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고용가능성의 차이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생물학적 문제로 치환시키는’ 오류를 일반화한다. 이는 인간을 오로지 ‘뉴런적 관점에서 보게 하고, 웰빙을 생산적으로 일하고, 경제에 기여하는 능력으로 정의’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교육의 의료화’이다. 대표적으로 ‘ADHD를 뇌 질환으로 분류하고, 많은 학생들이 그 질환을 보인다고 진단하는 것은 순전히 의학적인 것’이 아니며, 이 배후에는 ‘고부담 시험과 학교 운영의 경영 책임성,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있다. 때문에 저자는 교육자들은 ‘교육을 신경과학자들에게 양도해서는 안 되며, 교육을 오로지 학습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 그리고 청소년들의 중독, 범죄 행동, 경솔함, 우울함을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보면서, 이런 현상을 만다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환경을 은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졸더스마의 주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는 신경과학의 성과를 과도하게 신봉하는 경향과 심지어 사이비과학을 가지고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자, 청소년들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인격적 성숙의 책임을 신경과학을 빌미로 개인의 영역으로 떠 넘기고 그 책무성을 회피하려는 자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논문은 헬레나 싱어의 ‘브라질의 혁신교육운동: 홀리스틱 교육경험’이다. 싱어는 브라질 교육부의 특별 고문으로 2007년부터 2015년까지 ‘학습하는 학교도시’의 감독을 맡았던 경험을 가진 실천적인 이론가이다. 이 논문은 파울로 프레이리도 관여했던 브라질 상파울루시의 교육혁신이 브라질 전체로 확산 될 수 있었던 요인을 분석한 것이다.

브라질은 25년간의 군사독재 이후 1988년 민주화를 이루었으며, 브라질 헌법을 만들었다. 이어 1996년 [교육 가이드라인 및 재단법]이 통과되었다. 이를 통해 ‘무학년 학교 조직, 포괄적인 평가 도구의 채택, 공원·광장·영화관·도서관 등 새로운 학습공간의 사용’이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 ‘모든 학교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의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과도 유사하다. 우리는 1987년 민주화를 이루었고, 1987년 헌법을 개정하였으며, 1995년 매우 한계적이었지만 문민정부가 5.31 교육개혁안을 발표했고,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브라질은 한국과는 달리 조금 더 진보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였다. 그것은 파울로 프레이리가 상파울로시의 교육감이 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그 중심에는 홀리스틱 교육이 있다. 싱어는 홀리스틱 교육은 ‘개인의 총체적인 발전- 개인의 정신적, 감정적, 육체적, 사회적, 윤리적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독립적인 공간과 주체간의 협력’에 기반하며, ‘학교는 가족, 지역사회, 다른 교육기관과의 연결을 위한 민주적 학교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민주적 학교의 양태는 매우 다양하다. 첫째, ‘도시의 중산층 지역에 있는 공립학교’에서의 변화였다. 이들은 ‘교실을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 큰 홀을 만들었으며, 커리큘럼은 이전에 과외 활동이었던 것들을 그 자체로 통합’하였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운영을 위한 ‘기금은 연방정부, 주정부 및 지방자치단체가 시민사회단체와 체결한 협약을 통해 지원’하는 구조였다.

둘째, ‘지역 변혁을 위해 주민단체와 제휴한 공립학교’의 사례이다. 빈민가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교육학적 관점이 반영된 강력한 학교 평의회와 조직화된 길드 및 위원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공화국이라도 불리는 위원회를 구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선출된 학생들과, 교사, 교직원이 참여하며, 구성원간의 공존, 존중을 목표로 하였다’고한다.

셋째, ‘지역사회 학교’로, ‘저소득층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예술과 스포츠활동을 지원하는 앵커 프로젝트’이다. ‘학생들은 튜터와 함께 로드맵을 수립하며, 앵커의 넓고 넉넉한 공간에서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사회적·환경적·문화적 지역 문제에 접근하기에 지역사회를 교육과정으로 참여시키게’ 된다. 이를 통해 ‘교육 실천이 학교 벽을 넘어 지역사회에 대한 관여로 이어지며, 지역사회를 생태적으로 재창조하는데 기여 하게’ 된다.

넷째, ‘지역사회와 학교를 지원하고 정부의 개발 지원을 받는 교육 이웃 공동체와 이를 장려하는 시민사회 단체’의 경험이다. 브라질 민주화의 성과는 수많은 시민사회단체의 결성으로 이어졌는데 그중 1997년 결성된 ‘학교도시 협회’가 있다. 이들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구분을 깨기 위한 의사소통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학습하는 동네’라는 방법론을 적용하였는데, 그 핵심은 ‘학교와 지역사회의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지역사회 교사의 역할 창출, 지역의 교육 기회 도식화와 이에 필요한 파트너십의 구축’이었다. 이들은 ‘교사들을 위한 연수를 실시 하고, 지역사회 지도자와 문화 활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학교 내 문화공간의 창조, 학교와 지역사회를 위한 학생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였다.

홀리스틱 교육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하나로 묶어’내었는데, 이는 ‘연합교육센터’의 설치로 이어졌다. 상파울로시는 ‘3개의 학교를 묶는 연합교육센터를 설치하여 무려 54개의 연합교육센터를 설치했는데, 이 센터는 교육, 문화, 스포츠를 목적으로 하는 공공시설’로 그 목표는 ‘어린이·청소년의 전인적 발달, 커뮤니티 개발, 새로운 교육 경험을 위한 혁신’이다.

브라질의 홀리스틱 교육은 한국에서 2010년 교육감직선제 이후 본격화된 혁신학교, 혁신교육지구와 2014년 이후 확산된 마을교육공동체운동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브라질은 전인적 발달과 성장을 위하여 학교와 지역의 협력, 학생들의 자치활동, 학교 민주화, 그리고 연합교육센터와 같은 공간의 창출을 우리보다 먼저 시작하였다. 아마도 이를 통해 성장한 학생들은 브라질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만들었다. 이는 한국에서 혁신학교,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성장한 세대들이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주역으로 성장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의 뿌리는 매우 깊다. 브라질에서는 지방정부를 노동당이 집권하고 2003년 노동당 후보 룰라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많은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2018년 검찰의 세탁작전으로 룰라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감옥에 갇히고, 군인 출신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은바 있다. 극적으로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룰라가 다시 대통령이 되었지만, 보우소나루와 그 지자들은 결과에 불복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다. 다행히도 최근 2025년 3월 26일 브라질 법원은 만장일치로 보우소나루와 일당 8명을 쿠테타 음모 혐의로 재판을 하기로 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적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안에 있다. 25년간 군사독재를 종식하고 민주화를 이룬 브라질에서 도살자 혹은 제2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한국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진 군부독재를 1987년 민주화로 종식시켰지만 윤석렬과 그 일당들이 벌인 내란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만큼 독재의 뿌리는 깊다. 파시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복해 있었을 뿐이다.

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교육만 바뀌어서는 세상이 바뀔 수 없다. 하지만 교육을 바꾸지 않고는 세상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대안교육은 대안교육기관의 교육으로 협소하게 이해하면 안된다. 대안교육은 교육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이다. 대안은 현재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통해서 마련된다. 그리고 이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실천하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세계의 대안교육』 이라는 책이 이를 위한 소중한 영감을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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