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 부족함이 만들어 내는 선택과 행동의 비밀
센딜 멀레이너선.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빌리버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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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왜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을까? 왜 빈곤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과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것일까?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빈부 격차가 교육격차를 만들고 교육격차가 다시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교육격차는 사람들의 정치의식의 격차로 이어지며 이는 종종 하층계급이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정치적 선택을 하는 현상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다시 질문을 해보자. 도대체 결핍 즉 무언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대체 어떤 어려움을 겪기에 이런 행동을 하고 그 결과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된단 말인가? 바로 여기에 힌트를 주는 책이 있다. 최근 번역된 행동경제학자인 센딜 멀레이선과 인지심리학자인 엘다 샤퍼의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이다.

인간은 무언가 부족할 때 심리적 압박을 받는다. 그것은 돈일 수도 있고, 시간일 수도 있다. 결핍 상태에서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지나친 집중은 문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저자들은 이를 ‘터널링’으로 설명한다. 이는 ‘터널안으로 들어가면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 사물은 보이지 않는 터널 시야 현상’을 근거로 만든 단어이다. 터널링에 놓인 사람은 사물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달리게 되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렵게 된다.

 

결핍은 사람들을 터널안으로 끌어들이고 대역폭 즉 ‘주의를 기울이고 좋은 판단을 내리며 앞서 세웠던 계획을 고수하고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을 축소 시킨다. 저자들은 학교 옆에 기찻길이 위치하여 소음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제시하였다. 기차 소음에 직접 노출된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은 덜 노출된 교실에서 수업하는 학생들보다 학업성취도가 떨어졌다. 저자들은 기차 소음을 변수로 들었지만 어디 변수가 이뿐이겠는가?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가족 간 관계가 화목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간의 학습격차는 기차 소음 이상의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가정폭력과 빈곤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이 각종 스트레스로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낮게 나타나는 것, 가난한 집안의 대학생들이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으로 부유한 집안의 대학생 보다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것은 같은 이유이다.

 

결핍은 인지 기능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핍은 유동성 지능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가져온다. 인지 능력은 결코 유전적으로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환경에 따라 변한다. 저자들은 유동성 지능 측정 도구 중 하나인 ‘레이븐 누진 행렬 검사’를 통해 유동성 지능이 빈부 격차나 수면격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피실험자의 재정결핍과 수면결핍이 지능에 부정적인 결과를 영향을 미쳤다.

결핍은 실행 제어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을 두고 선택해야 할 때 빈자는 부자에 비하여 눈앞의 문제에 매몰되게 된다. 저자들은 이를 “빈곤 자체가 정신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표현한다. 결핍은 긴 안목을 가지고 미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이익을 보류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는 경제적 빈곤에 그치는 문제일까? 눈앞에 이익에 매몰된다는 것은 경제행위에만 해당 되지 않는다. 생계를 위협받거나 근근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총체적으로 살펴보기 어렵다. 저자들은 이렇게 단언한다. “결핍은 우리를 멍청이로 만들고 우리를 보다 더 충동적으로 만든다.” 매우 슬프지만 이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달콤한 거짓말에, 혐오적인 선동에 휘둘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들은 결핍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며 환경의 문제임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빈곤은 빈곤한 사람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맞다. 그 수많은 자기 계발서와 실업자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환경이 아닌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낡은 발상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항공기 조정사의 반복된 실수가 조정사의 훈련 부족이 아니라 조종 좌석의 설계 자체가 문제였던 사례를 예로 들면서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결핍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대역폭’을 넓힐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저자들은 ‘투잡(two job)을 뛰어야 생계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아이 둘을 가진 싱글맘에게 만일 정부가 공적 보육을 제공한다면 돈은 물론이고 아이들을 데이케어 프로그램 운영 시설과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데리러 오는 시간을 절약하여 대역폭 즉 실행 제어 능력이 커질 수 있음’을 사례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집세와 식비, 교육, 의료비는 필수 가계 예산으로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의 대역폭에 영향을 미친다면 교육, 보육, 보건, 금융을 별개로 보아서는 안되며, 어떤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제공하는가 그리고 보다 나은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는가’가 중요함을 지적하였다.

 

한편 저자들은 결핍의 덫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느슨함’을 강조한다. 저자들은 수술 건수에 비해 수술실이 부족한 병원에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수술실 하나를 비워두는 것이었다. 왜인가? 병원에서 수술은 예정된 수술과 예정되지 않는 수술로 나뉘는데 수술실을 예정된 수술을 하는데 다 써버리게 되면, 예정되지 않는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실을 재배정 해야 하기에 의사들은 시간부족에 내몰리게 되고 심지어 과실 사고도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수술실 하나를 통째로 비워두고 나니 긴급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병원 경영에만 적용되는 방법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조금의 쉴 틈 조차 없이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경우에 내몰리다면 아주 작은 변수에도 다음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그 결과 하루 혹은 한주 혹은 한달 전체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게 된다.

 

느슨함이 주는 교훈은 어린이·청소년의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들의 행복도가 국제적 비교평가에서 낮게 나타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상에서 느슨함 즉 쉼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내 주장에 대해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공부는 안 하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는데 무슨 더 이상의 느슨함을 주어야 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붙잡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들을 둘러싼 환경에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어린이·청소년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보다 입시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입시경쟁교육은 학생들에게 쉴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빈 수술실이 없는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처럼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안의 다람쥐처럼 돌면서 허덕인다. 그들에게는 여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인지와 정서의 통합적 발달, 지·덕·체의 균형적 발달은 커녕 오히려 결핍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인지 기능, 실행제어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느슨함이 허용되지 않는 결핍 상황에서 그들은 가장 손쉬운 선택 즉 눈앞의 스마트폰을 붙들게 된다.

 

저자들이 말했듯 결핍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환경, 느슨함이 허용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교육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핍으로 인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학교-지역사회-국가 모두가 나서야 한다.

오는 6월에는 지방자치선거가 치뤄진다. 선거철이 되면 교육감 후보들은 너 나할 것 없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을 지자체장 후보들은 주민 복지 확대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터널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개인적 수준- 가정 수준- 지역 공동체적 수준- 국가적 수준을 연결하여 심도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만일 우리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결핍의 덫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과 상황을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구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교육과 복지는 물론 조직 운영 등에서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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