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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 - 헌법에 숨겨진 교육의 자주성에 관한 오해와 진실
채희태 지음 / 살림터 / 2026년 9월
평점 :
서평: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을 읽고
김태정 (사)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이사
헌법 31조 4항의 내용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이다. 이는 교육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번은 들어봤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교육의 자주성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사람들이 대체로 당연하게 여기는 주제라면 답변들도 거의 비슷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도서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에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에 대해 탐구한다. 동시에 교육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 나아가 교육자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자신을 교육전문가로 칭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불편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나 통념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저자는 먼저 ‘세계 40여 국가의 헌법 중에서 교육의 자주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함’을 확인시킨다. 다른 나라들은 ‘교육의 자주성’을 대신하여 다양한 용어를 썼는데 ‘독일은 학문의 자유, 일본은 부당한 지배 금지, 미국과 독일은 교육의 지역 분권, 북유럽 국가들은 교육 평등, 프랑스는 학생 중심으로 각국의 역사적 맥락에 맞는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헌법 31조 4항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보여준다. 자주성이라는 단어는 지배적 통념과는 달리 1948년 7월에 공포된 「제헌헌법」에는 없었고, 1949년 12월 공포된 「교육법」을 통해 명문화되는데 여기서는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를 명확하게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로 특정하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1961년 5월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헌법 개정을 하는 과정에서 ‘대한교육연합회 등이 요구했던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 보장 요구를 헌법에 포함’시키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당시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했던 군사정권이 교육계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1949년 교육법과는 달리 군사정권 시절 개정된 헌법에는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도 목적도 사라진 채 선언만 남았다’는 점이다. 한편 교육의 전문성은 박정희의 사망 이후 1980년 군사 쿠테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가 헌법을 다시 개정하면서 대한교육연합회 등의 요구를 받은 것으로 결국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은 군사 정권의 취약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타협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이 ‘적층적 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안에는 독립, 자치, 특권이라는 결이 동시에 들어 있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는 헌법 재판소의 판결에서도 나타나는데, 특히 교육의 자주성에서 그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일관성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저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찬반논리에서 등장한 논쟁, 교육감 직선제를 둘러싼 논쟁, 국정교과서 논쟁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모순된 내용으로 점철되었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논쟁들에서 나타난 패턴인데 저자는 이를 1) 교육의 자주성은 권력에 대한 저항의 언어로 출발했지만 저항이 성공하게되면 저항의 주체가 권력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2) 교육의 자주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주체가 실질적 수혜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3) 이 과정에서 정작 학생들은 주체가 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저자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의 한계를 지적한다. 즉 ‘교육의 자주성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하는 도구가 되고,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전문가집단의 배타적 권한으로 해석되면서 지역 주민, 학부모의 참여를 제한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정치적 중립성은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저자는 ‘교육전문가와 관료에 의한 교육자치가 아니라 시민들이 교육의 방향과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교육으로 전환’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주체의 재구성이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헌법 31조 1항을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로 헌법의 구조 자체가 교육의 주체를 ‘교육받는 자’로 설정하고 있으며, 교육의 전문성과 교원의 지위는 하위 차원의 조항이기에, 교사 또는 교육전문가를 교육의 자주성의 주체로 설정하는 것은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다. 즉 교사도, 학부모도, 지역공동체도 모두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지원자이자 주체라는 것이다.
『교육에 던지는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의 저자의 주장은 ‘교육은 교육전문가인 교사만이 할 수 있다거나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낡고 오래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듣기에는 여전히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 청소년의 전인적인 성장과 발달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에 더 이상 갇혀 있을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인류에게 미증유의 사건이 될 인공지능의 시대에 걸 맞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만든 신조어인 엉당질(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은 교육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