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주류 프로젝트 - 뜨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법
팀 밀라논나 지음 / 김영사 / 2025년 9월
평점 :
<비주류 프로젝트>는 멈춰 서서 일해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시간은 일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바닥에서 기초를 다지고,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는 팀의 이야기. 지금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조금 더 또렷하게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총 50개의 챕터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챕터 3가지를 선정해 보았습니다.
#30 아이디어 발굴 루틴
감각이 부족해도 괜찮다
방송작가에서 콘텐츠 기획자로 전향한 이향 기획자는 기획 3년 차에 데이터분석 자격증을 땄습니다.
"저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감각도 부족한 편이고요. 대신 데이터를 보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라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그에게 데이터는 부족한 직관을 보완하는 설계도였고, 기획서에 논리를 불어넣는 근거였습니다.
감보다 증거를 먼저 신뢰하는 사람. 이향 기획자의 루틴은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도 일관성 있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37 성실한 사람의 탈출 욕구
열심히 했는데 왜 나만 손해 본 것 같을까?
<비주류 프로젝트>의 37번째 챕터를 읽으면서 울컥했습니다. 마치 제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습니다.
이향 기획자는 틱톡 채널을 1부터 만들었다고 합니다. 10대 타깃에 맞춰 콘텐츠를 기획하고, 직접 편집하고, 알고리즘을 공부하며 국내외 수십 개 계정을 연구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왔고, 업계 1위까지 달성했습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 BTS 인터뷰를 한번 올리니까 한 시간에 구독자 10만 명이 늘더라고요. 그날 너무 허무했어요. 나는 채널을 1부터 만들고 있는데..."
저도 똑같았습니다. 일이 많아서 건강을 해쳤고, 입원까지 했습니다. 소모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계속 일했죠. 그런데 올해 연봉협상에서는 회사 합병을 이유로 모두가 같은 인상률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한 건 소용없구나.’
책 속 이향 기획자의 허무함이 바로 제 허무함이었습니다.
이건 성실한 사람이 흔히 겪는 좌절의 순간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으니 그 성과에 최상의 보상이 따를 거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말입니다. 나 자신이 텅 빈 듯한 느낌.
하지만 이향 기획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해보면 틱톡 채널 만들면서 배운 것들이 지금 저한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유튜브 쇼츠 영상 만들 때 훨씬 빠르게 감이 잡히고, 그때 했던 리듬이나 텍스트 처리 같은 게 몸에 배어 있더라고요."
팀장의 답변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성과는 잊혀도 역량은 남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나에게 쌓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 시간이 허무하지 않을 거야."
저는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연봉은 같은 비율로 올랐을지 몰라도, 제가 쌓은 경험과 역량까지 똑같이 나눠진 건 아니었습니다. 입원할 만큼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지만, 사실 저는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고, 위기를 견디는 법을 알게 되었고, 프로젝트를 끌고 가는 힘을 기르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회사가 보상해주지 않아도, 그 시간은 온전히 제 것으로 남는다는 걸. 이 챕터를 읽으면서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비주류 프로젝트>의 이 챕터는 성실하게 일했지만 인정받지 못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당장의 보상이 공정하지 않아도,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소모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쌓이고 있다는 것을. 그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던 저에게, 이 챕터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50 좋은 선배, 좋은 후배는 없다.
좋은 관계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
<비주류 프로젝트>를 읽으며 계속 생각했습니다.
‘이런 팀장 밑에서 일하는 팀원들이 부럽다.’
‘이런 팀원들이 모여있는 것도 부럽다.’
그런데 50번째 챕터를 읽는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누구 하나 노력하지 않고 만들어진 관계는 없다. 내가 좋은 팀장이라서 그들이 나를 따라온 것도 아니고, 그들이 특별히 착해서 내가 그들을 편하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했을 뿐이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떤 노력을 해왔나. 상대에게 먼저 바라기만 했지, 제가 먼저 바라는 것을 줄 줄 아는 태도를 가졌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부러워하기만 한 건 아니었나.
책에서 저자는 명확히 말합니다. 사실 좋은 선배나 좋은 후배 같은 절댓값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대적 존재일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사사건건 훈수를 두는 선배가 다른 이에게는 사려 깊은 멘토일 수 있습니다. 한 후배가 어떤 팀장에게는 의지가 되고, 다른 상사에게는 골칫덩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관계의 문을 누가, 어떻게 여느냐입니다.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옵니다.
"서로를 위해 우리는 매일 작은 선택을 한다. 한마디 더 말할지, 참을지, 정리해줄지, 기다릴지, 혼자 할지, 같이 할지."
그리고 팀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
"이 정도로 손발 맞추는 데 들인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같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말이 진심으로 들리는 팀. 그런 팀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팀은 저절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하나 노력하지 않고 만들어진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했을 뿐이었습니다.
이 챕터를 읽고 나서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좋은 선배인가? 좋은 후배인가? 좋은 동료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나는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상대에게 먼저 바라는 것보다, 내가 먼저 바라는 것을 줄 줄 아는 태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부러워하기만 했던 나를 마주했습니다.
좋은 관계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대가 아닌 나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이 팀이 부러웠습니다. 8천 개 영상을 정리하는 지루한 작업도, 경쟁심을 솔직히 털어놓는 용기도, 데이터로 불안을 이겨내는 방식도.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이들도 저절로 이렇게 된 건 아니었습니다. '성과는 잊혀도 역량은 남는다'는 위로, '좋은 관계는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깨우침. 서로가 서로에게 노력했을 뿐이라는 고백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관성에 순응하지 않고 버텨온 팀의 솔직한 기록을 추천합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모든 내용은 제 진심 어린 감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