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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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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이모의 이야기를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이모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냉정하게 대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이모도 더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않았다.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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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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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같이 내일 아침에 이걸 심자." 아주머니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얇은 봉지 세 개를 치켜들었다. 우리가 즐겨 쌈을 싸먹던 적상추, 방울토마토 그리고 한국 고추 씨였다. 어릴적 서울에 있던 어느 고깃집에 갔을 때 내가 직감적으로 날고추를 집어 쌈장에 푹 찍어 먹어서 엄마의 탄성을 자아낸 일이있었다. 이 채소의 쓰고 매운 맛은, 고추와 콩을 발효시켜 만든 쌈장의 향긋하고 짭짤한 맛과 완벽하게 궁합이 맞았다. 이는 날것인 무언가가, 두 번의 죽음을 겪은 제 사촌과 재회하는것 같은 하나의 시적인 조합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 옛적부터 이렇게 먹었어." 엄마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아침마다 집 주변을 산책하는 거야." 아주머니가 말했다.
"식물에 물도 주면서 자라는 것도 보고."
아주머니는 현명했고 우리를 감화시켰다. 특히 겁먹은 내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아빠가 허우적대는 동안 아주머니가 구원자처럼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주머니는단호히 말했다. "내가 여기 있잖아." 아주머니와 함께라면 엄마가 진짜로 이 병을 극복하고 나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언니." 엄마가 말했다.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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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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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야기에 끝이 있듯이, 인생에도 끝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이 결말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듯이, 인생의 의미도 죽음의방식에 의해 의미가 좌우된다. 결말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동안 진행되어온 사태의 의미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은 제대로 죽기 위해서 산다"는 말의 의미다.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삶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은 선택할 수있다. 인간의 삶은 전적으로 자유와 존엄이 박탈당한 상태에서 시작되지만, 개개인은 자기 삶의 이야기를 조율하여 존엄 어린 하나의 사태로 마무리하고자 노력한다. 비록 우리의 탄생은 우연에 의해 씨 뿌려져 태어난 존재일지언정, 우리의 죽음은 그 존재를 돌보고자 한 일생 동안의 지난한 노력이 만들어온 이야기의 결말이다. 스스로를 어찌할 도리 없는 지경에 그저 처박아버리기 위해일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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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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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 엄마는 김 봉지를 뜯어 내 밥그릇 옆에 놓았다.
"진짜 맛있어!" 나는 입안에 아직 음식이 반쯤 남은 상태로연방 쓰러질 듯한 시늉을 하면서 대답했다.
엄마는 내 뒤 소파에 앉아, 내가 걸신이라도 들린 듯이 어귀어귀 먹는 동안 얼굴 쪽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어깨 뒤로 걷어주었다. 내 몸에 닿는 엄마 손길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살짝끈적끈적한 크림기가 남아 있는 차가운 손은 더는 내가 화들짝 피하기 바쁜 불쾌한 손이 아니라 가만히 기대고 싶은 손이었다. 마치 엄마의 애정에 이끌리는 어떤 중심이 내 안에 새롭게 생겨난 것만 같았다. 내가 그 자기장에서 떠나 있었을 때까지 새롭게 충전된 중심이. 나는 또다시 엄마를 기쁘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동안 홀로서기하느라 좌충우돌한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 엄마가 웃음을 떠뜨리게 만들고, 그걸 달콤하게 음미하고 싶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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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아노 - 모든 것은 건반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무튼 시리즈 48
김겨울 지음 / 제철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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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세계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다섯 살 이래로 음정은 언어의 자리에 슬며시 밀고 들어와 등나무처럼 결합했다. 나는 평생 소리와 함께 살았고,
지금도 무수한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음이 되고 음이름이 되어 뇌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 그것은색이 되어 잠시 뇌를 물들이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모든 것은 피아노의 유산이다. 나는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세계를 가진 인간이 되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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