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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미디어와 아시아 정체성 - 혼종성과 저항성의 경계 ㅣ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총서 기초연구시리즈 19
윤선희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4월
평점 :
한창 COVID-19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전세계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2월에, 나는 독일을 여행하고 있었다. 당시는 중국을 중심으로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을 때였고, 유럽 국가들에는 발병 사례가 거의 없었다. 우리 일행은 베를린행 직항 노선이 운항되지 않기 때문에 핀란드를 한 차례 경유하는 핀에어 항공기를 이용해야 했다. 경유 비행편에 탑승하려고 셔틀버스에 올라탄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버스 내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일행을 둘러싸고 원이 그려졌다. 그 원이란 사실상 암묵적인 접근 금지선이었다. 다들 우리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무서워하고 있었다. 사람이 북적여 여유공간이 별로 없었는데도 아무도 우리 일행 근처에 오려 하지 않았고, 덕분에 버스를 쾌적하게 탈 수 있었지만 하나도 달갑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이었는데, 그 버스에 올라탄 후에 나는 '아시아인'이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일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꾸준히 나에게 질문을 던져 왔다. 아시아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은 어떠한가? 그리고 글로벌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포지셔닝되는가? 해외에서 살아가려면 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할 것인가? 그 답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이번에는 『글로벌 미디어와 아시아 정체성』을 펼쳐 보았다.
이 책은 기존의 아시아 연구로 아시아적 정체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수용론적 관점에서 해외 한류문화 수용자들의 사례를 분석하여, 아시아적 정체성의 실마리를 모색하고자 한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자국의 사회, 문화적 현상에 비판적 관점을 가진 해외 수용자들이 한류에서 그 대안을 발견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정체성 논의의 어려움은 크게 네 가지의 근거에 기초한다. 첫째는 아시아 지역을 공동체로 묶어 주는 구심점이 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아시아에도 경제 협력을 위한 기구가 존재하나, 견고하고 지속적인 조직적 실체가 있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도 대단히 이질적이어서 지리적 인접성 외에는 공유하는 요소가 많지 않다. 둘째는 문화적 차원에서도 구심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유교나 불교 문화로 아시아 정체성을 일원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저자의 관점에서 이들 종교는 민생의 기반이 되기보다 권력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민중적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셋째는 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초기의 움직임이 제국주의적이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메이지유신기 일본에서 시작된 아시아주의 운동은 서구에 대항하여 아시아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의미를 가졌으나, 제국주의 정당화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치명적 한계를 가진다. 넷째는 모든 아시아 국가가 서구화를 거쳤기 때문에, 아시아를 논의할 때에도 서구중심적 관점에 기반하는 혼종적 시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정체성을 저항성과 혼종성으로 설명하려는 노력 또한 벽에 부딪힌다. 우선 저항성은 아시아가 공유하는 제국주의 역사의 경험을 관통하는 요소로, 서구에 대항하고자 하는 저항적 흐름을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첫째로 저항성에 기반한 문화적 시도들이 실제로는 서구의 모방으로 귀결된다는 점, 둘째로 아시아 내부에서 문화의 흐름이 가지는 역동성을 저항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 셋째로 저항성이 문화 수용자들의 일상적 영역을 해명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저항성 논의의 한계를 검토한다.
저항성의 대안으로 제시된 혼종성 또한 한계를 가지는 개념이다. 저자는 우선적으로 혼종성 개념이 식민지와 피식민지 간의 위계적인 융합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의 주체성 상실을 가리키는 말이었음을 지적한다. 그뿐만 아니라 혼종성은 첫째로 아시아 내부의 갈등과 경쟁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고, 둘째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마블 히어로 시리즈 중에서는 최초로 흑인 영웅을 주연으로 한 영화 <블랙팬서>가 개봉했을 때, 시대적 배경이 현대임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계 토착 문화를 적극적으로 살린 연출에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블랙팬서>의 강렬한 전통의상과 음악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내내 머리에 맴돌며 의구심을 품게 했다. 서구에서 비슷한 영화가 아시아인을 주연으로 만들어졌을 때, 그 배경에 이른바 '정통 오리엔트적인' 연출이 짙다면 그 영화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블랙팬서>에서 이러한 전통색을 적극적으로 살린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나를 가장 납득시켰던 설명은 흑인과 아시아인의 역사적 배경이 상이하다는 것이었다. 아시아인에게는 서구의 시선에서 오리엔트로 대상화되는 역사가 있었으나, 아프리카계 흑인에게는 자신의 뿌리를, 그리고 정체성을 부정당한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블랙팬서>에서는 주인공이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 설명을 듣고 나니 어째서 <블랙팬서>가 그런 연출을 채택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혼종성 담론의 유래를 지적하는 저자의 시선은 타당한 것으로 느껴진다. 반드시 전통과 뿌리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전혀 다른 역사적, 인종적 맥락에서 제기된 주장으로 아시아를 해명하기에는 난점이 있다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렇다면, 아시아적 정체성을 구제하는 다른 방도는 무엇일까? 저자는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싶은 것일까?
저자는 아시아적 정체성의 연결고리를 대중문화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아시아의 현 미디어 대중문화는 서구 문화를 흡수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아시아 대중문화의 생산과 소비 현장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서구 문화의 수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양상이 나타난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류 드라마 수용자들은 자국민들이 잃어버린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을 한류 드라마 해석에 투영하고 있으며, 일본에 거주하는 걸그룹 팬들은 여성적 저항성의 상징인 '긴 다리'라는 코드를 한국 걸그룹 문화에서 읽어내고 있다. 이런 면모를 보면 해외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은 공통적으로 대안적 사회와 문화를 향한 욕망에 기반한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이나 동유럽의 한류 문화 수용자들은 자국 문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바탕으로 그 대안을 한류 문화에서 찾고자 한다.
저자의 연구 결과를 읽다 보면 '대안적 삶을 향한 욕망'은 언제나 우리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나 또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대안을 찾으며 타국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스스로가 위치한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싫증으로, 무엇이든 '내가 아닌' 것, '나의 현실이 아닌 것'을 찾아 우상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면에서 욕망이라는 키워드는 현대 인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숙명으로 얽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