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니 에르노의 <세월>1941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 사회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화자는 그녀로 지칭된다. 이 책은 논픽션이다. 현대 프랑스사회의 변화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그려진다. 전쟁부터 시작해 공산주의, 국가주의, 자본주의 ...... 페미니즘까지 점점이 펼쳐진 조각조각들을 읽으며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회상해 보지 않았을까. 나이는 상관없다. 어리든 나이가 많든 독자가 살아낸 시간의 흔적들을 아니 에르노의 작품 속에서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반가움과 뿌듯함, 회한어린 감정들이 교차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 거기 내가 있었지!’ ‘, 나도 저땐 저런 마음이었어!’라며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었던 것이 작가의 시공간과 겹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개개인의 시간들이 모여 국가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처럼 머나먼 나라의 독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 세월의 무늬를 더듬으며 나에게도 그녀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기억이, 그녀가 느낀 감정과 유사했던 적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처음 이 책의 소개를 읽으면서 공감 지점을 못 찾을까봐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으며,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보고 듣게 됐다. 오래전부터 허용된 규정에 따라 사용됐던, 특정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장소들, 대학, 공장, 극장이 모두에게 개방됐고 그곳에서 토론하기, 먹기, 잠자기, 사랑하기 등 본래의 용도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떤 노동자 지도자도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공산당과 조합의 지도자들은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필요와 의지를 결정지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합사회당에 남아 있었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마오, 트로츠키주의자들, 엄청난 양의 이념들과 개념들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운동, 서적들 그리고 잡지들, 철학가들, 비평가들, 사회학자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단체, 사회적 신분, 불공정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지식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말하고 들을 수 있었다. 여자, 동성연애자, 계급을 벗어난 사람, 억류된 사람, 농부, 미성년자로서 무언가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공동의 언어로 스스로 사고하는 것에 흥분했다.”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혁명의 시기를 온몸으로 거쳐 온 사람들은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인에게 1968년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진정한 혁명이 있었던가?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부르고 싶어하는 이들, 박근혜 탄핵 시 들었던 촛불의 시간을 촛불혁명으로 칭하는 이들, 모두 혁명 로망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촛불혁명의 주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이란 게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뜸해지면서 이따금씩만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분명 모성 관계에서 불충분함을 느끼고 있으며 성적인 행위만이 아닌, 아이들과 지나가는 다툼에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애인,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

 

아이들이 전적으로 엄마의 지원을 필요로 할 때는 얼른 성인이 되길 바라지만, 정작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면 엄마는 외로워진다. 바빠도 돌봐주느라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더라도 그런 대상이 있었을 때가 그리운 법이다. 그러니 빈둥지 증후군은 참 잘 만들어 낸 조어이다. 긴밀한 관계가 될 만한 대상이 남편인 여성들은 거의 없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회자되겠나. ‘중년 여성을 웃게 하는 세 가지는, 친구, , 고양이!’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 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살아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란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아니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책으로 펴냈기에 한국에 있는 독자에게까지 읽히고 기억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죽더라도 그녀를 기록할 이들이 있다. 나는 내가 살아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겠구나... 

 

 

 

우리는 세월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세월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것이다. 켜켜이 쌓여가는 세월의 더께가 무거워질 때 우리는 그만 떠나게 될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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