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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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페미니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권김현영의 책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 출간되었다. 왜 진화하는~ 이라는 부제를 달았을까? 이 책에는 총 5장에 걸쳐 60꼭지의 글이 실려 있고 이 글들은 저자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16년이라는 시간동안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담론화되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비롯,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지도 않지만 짚고 넘어가야만 할 것들 등등을 다룬 내용들이다. 저자는 일련의 사건들을 톺아보며 한국 사회에서 진화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자신의 시각으로 정리하고 있다

 

누군가 내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가 뭐냐고 묻는다면(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ㅎㅎ)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페미니즘이 뭐라는 걸 어디서 들었든 글로 읽었든 그 때 뿐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정확하게 설명해 줄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노동법이랑 비슷한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임에도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때그때를 넘기며 살아간다.

 

나도 여자이기에 어렸을 때부터 결혼후까지 무수한 남녀차별의 경험을 했다. 부당하다고 식식거렸어도 그냥 여자는 그렇게 사는 거겠거니... 하며 살았다. 나 하나가 뭐 그리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나? 체념하고 살았다는 말이 더 적당하겠다. 최근에 자주 들리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상황에 그리 맞지 않음에도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를 보면서 페미니즘이 일상화 되었고 그것을 이제 더 자주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혐, 남혐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는 걸 보니 남녀간에 대립과 갈등의 구도만 만들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보려고 서평단에 신청해서 받아 읽게 되었다.

 

p.8~9

나에게 페미니스트란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는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늘 쓸모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여성을 둘러싼 현실은 지겨울 정도로 비슷한 문제에 부딪히고 있으므로 페미니즘의 유용성을 인정받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은 피해 증거를 수집해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여성은 진화하지 않는 존재처럼 그려졌다. 하지만 지난 100년간 여성의 삶은 어떤 사회 혁명보다도 놀라운 수준으로 변화했다. 페미니즘은 이렇게 변화한 여성의 궤적을 담아내는 그릇이어야지, 몇몇 예외적인 여성의 영웅담만을 기억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 책에는 그 과정이, 생각의 여정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는 흑역사이고 어떤 건 특정한 상황에서만 의미 있는 기록이다. 이런 흔적들을 남겨둔 것은 진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위 인용한 프롤로그의 내용으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따라갈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무엇이 올바른지 찾아가고, 진화하고 있는 페미니즘을 기록하는 기록자이다. 그녀가 짚어나가는 이 길이, 나같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세계에 쉽게 발을 디딜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우리의 일상과 격리된 먼 곳에 있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사건들의 시간차는 16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그리 먼 거리감으로 체감되지는 않았다. 일련의 일들은 우리 주위에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들이 대부분이고 특별한 케이스도 있긴 했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내가 문제적이라고 여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을 발견한 것이다

.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사건을 다룬 꼭지, ‘안희정과 재판부가 유죄다에서 저자는,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증거를 인멸하고 무시한 그들이 유죄라고 했다. 물론 안희정은 지난 9월 대법에서 징역을 받았다. 이 글은 그 전에 쓰여진 듯하다. 사실 나는 안희정의 판결에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저런 인간들은 자신의 권력으로 여자들을 농락할 여력이 있고 그것을 충분히 행사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여자비서가 폭로한 저의가 궁금했다.

다른 경우는 일명 개똥녀 사건이다. 그저 지하철에서 개똥 안치우고 내린 여성을 비난한 사건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그 여성에게 어마무시한 공격이 있었다. 저자가 이 사건에서 짚은 포인트는 그녀의 무례한 행동이 그 정도로 공격받을 사건이었나? 그렇다면 다른 지하철에서 무례한 남성들에 대해서는 왜 공격하지 않나고 물었고, 그렇게 공격에 동참한 남성들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감히 어린 여자가 사람도 아니고 개를 우선시하며 나이 많은 남성을 무시하다니, 뜨거운 맛 좀 보라며 남성사회의 동맹과 힘을 과시한 소규모 전투였다. 여성이 취약한 집단이기에 더 쉬운 표적으로 지목되고, 여성의 무례함에 대한 대중적 공감을 쉽게 이끌어낼 수 있었기에 이길 것이 뻔했던, 너무도 지독하게 가학적인

 

최근 영화개봉으로 다시 핫이슈로 떠오른 책 <82년생 김지영>을 다룬 꼭지도 있다. 나는 책도 영화도 아직 보지 않았다. 주위에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소설이라기보다 고발르포에 가깝다며, 우리가 겪어온 이야기들이니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영화는 소설보다 괜찮더라고 하는 평가는 들었지만 아직 극장에 가질 못했다.

이 소설에서 포착한 시대정신을 저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요즘 무슨 성차별? 여성 상위시대지~”라고 말하는 것을 포스트 페미니즘적 감성이라고 부르는데, 성차별은 이미 지나가버린 문제거나 저 멀리 있는 다른 후진적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렇게 낡아버린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적 현실이라고 비판한다.

이 소설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라고 했다.

 

자꾸만 다른 여성으로 빙의하는 김지영 씨를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밝혔다시피 책을 읽지 않았지만 나는 이 책을 불편해하는 젊은 남자들의 태도에 더 관심이 있었다. <90년생 김지훈>이란 책을 통해 자신들도 역차별을 받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외치면서도 이중적 태도를 보이는 여성들을 까발리고 부패한 페미니즘도 알려야겠다고 한 이들이 있었다. 펀딩으로 책을 내려고 했다가 중단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82년생이고 미혼인 내 남동생의 입을 통해서 이미 여성 비판을 충분히 듣고 있다. 그 내용들은 자신의 경험도 있고 일베에서 회자되는 이슈들을 끌어와 말하는 것도 있다.

나는 궁금했다.

저들은 왜 억압받았던 여성들의 과거는 인정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불이익이 그녀들 탓인 것으로만 치부할까? 자신이 경험했던 극히 일부 여성들의 이중적 태도로 전체를 아우르려고 하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결론은 항상 그러니까 여자는 나쁘다, 이기적이다.’ 이런 식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사실대로 풀어놓으면 어떤 이들은 그게 더 어불성설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내가 쓴 이 리뷰를 읽어봐야 몇 명이나 읽으랴 싶어서 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류 역사 이래로 공고히 유지해온 남성의 기득권에 금이 가는 것을 위협이라고 느끼는 그들의 몸부림으로 보인다. 물론 오늘날 남성들이, ‘지금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조상이 오랫동안 누려온 것을 여성들도 정당하게 같이 누리자고 하는 것을 못견뎌 하고 있다. 90년생들을 평가한 책에서 보니 그들이 원하는 건 공정이라고 하던데 여성의 정당한 권리 찾기는 왜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건가? 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대상은 남성만인가? 이해할 수 없다. 그들도 변화하는 시대와 여성의 권리찾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아주 서서히 변하고 있고 여성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느린 속도로 자신이 당한 억압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는 것으로만 여겨 혐오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태도는 차~~암 못났다고 밖엔 할 말이 없다.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알았고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을 정립한 것은 아니다! 그러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감한 인간으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았다. 가사노동과 명절 지내기에서 겪은 억울함과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여기며 살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그 반응들을 보면서는, ‘참 유별나다, 누군 뭐 안 당했나? 경중의 차이일 뿐이지.’라고 시크한 척 했다. 이젠 어렴풋하나마 알겠다. 생물학적으로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중성과 같은 태도로 살았으며 여성이라 당한 일들에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행동하지 않은 채 길들여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아마 대부분 여성들은 나처럼 살았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성폭행이나 살해를 당하지 않은 것을 그저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책을 통해 나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알고 무엇이든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간 누린 권리는 무임승차 편이었으나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발걸음을 떼야 할 때가 아닐까. 페미니즘의 진화에 아주 작은 발자국을 찍고 싶은 마음이다.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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