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
장자자 지음, 정세경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 신진작가 "장자자"를 처음 만났다. 소설 <우리가 나누었던 순간들>로.

장자자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소설가로 전작 <너의 세계를 지나칠 때>는 천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해서 이 소설도 기대하고 읽게 되었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긴 이야기"라는 출판사의 소개는 가슴절절한 러브스토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혹 제목과 소개를 보고 눈물 콧물 쏙 뺄 애절한 사랑 얘기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니 기대감 좌악 빼고 읽는다면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감동하게 될 것이다. 그 지점이 어디인지는 본 리뷰에서 밝힐 수가 없다. 우연히 맞닥뜨릴 문장에서 느낄 공감이나 반가움을 빼앗으면 안되니까...

 

어딘지 좀 부족해 뵈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주인공 류스산은 영화 <첨밀밀>의 소군을 닮았다. 1997년에 나온 영화의 주인공이 20년이나 지난 소설속 주인공과 오버랩되는 것은 아마도 작가가 영화감독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헤어지고 10년이 지나 류스산과 청샹이 다시 만나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자. 스산의 친구 즈거가 등려군의 노래 '월량대표아적심'을 불러주겠다고 하자 청샹은 주걸륜의 '반도철합'을 들려달라고 한다. 자기는 90년대 이후에 태어났다며.

 

현대를 사는 20대에게 1997년이란 얼마나 옛날인가. 소설 전편에 흐르는 정서는 80, 90년대의 느낌이다. 마치 세피아 색상을 입힌 화면을 보는 듯 했다. 현실을 꿋꿋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스산에게 늘 허기진 정서는 모성이다. 그의 감성에서 영화 <아비정전>의 아비가 어른거리는 것 역시 작가의 감성때문일 것이다.

 

<아비정전>이 언제적 작품인가.1990년에 나온 영화다. 작가가 몇년생인지는 모르겠는데(정보조회가 안됨) 나이와 무관하게 그가 좋아하는 영화와 감독의 스타일이 소설속에, 주인공에, 투영된게 아닐까 싶다. 그 여명과 장국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웠고 영화처럼 읽혀서 좋았다.

 

이 소설에서는 특별한, 대단한 사건이 터지지 않는다. 물론 대반전이 뒷통수를 치지도 않는다. 류스산이라는 청년이 열심히 살아가는 이야기, 그 주위의 인물들과 연결되는 이야기들이 현대 중국 사회의 면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왠지 시골스러운 느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얼토당토않게 벌어지는 사건들은 헛웃음이 날 정도지만 정서와 문화가 다른 중국이야기의 맛을 보여준다.

 

스산 옆의 중요한 인물은 외할머니와 청샹이다. 엄마없는 스산곁을 지켜주며 무한 사랑을 베푼 외할머니, 손 한 번 잡아보진 못했으나 스산의 영원한 여자친구로 남은 청샹. 평생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던 스산곁엔 두 여성이 있었고 그들이 충만한 사랑을 주었지만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엄마를 향한 갈구는 그것을 온존히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까이 있는 존재의 소중함보다 손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더 컸던 것이다. 그것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만으로 해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성은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청샹도 병치료로 떠난 후, 그렇게도 안 되던 보험계약도 많이 하게 되고 이것저것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 본다.

 

이 소설에 극적인 결말은 없다. 그리고 대놓고 스산의 성공을 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스산은 이제 더이상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임을. 그것이 스산의 성장임을. 그래서 스산으로 대표되는 중국 청년세대가 살아가기에 그리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하나하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