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카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남들보다 좀 더 아름답다는 이유로 다른 수용자처럼 머리도 깍이지 않고, 나치장교의 성노리개도 살아가며 목숨을 부지한다. 가스실로 보내어지는 수용자들을 관리하는 임무도 맡으며, 거기서 어머니 또한 죽음의 수레에 태울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나이 고작 16살이었다.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의 살아남은 자들이 모두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실카는 나치에게 몸을 팔며 생존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아 러시아의 보루쿠타 수용소로 다시 이송된다. 15년의 노동형에 처해진 것이다. 강간을 당한것이었다고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살아남고자 한 그녀의 선택이 다른이에겐 혐오였던 것이다.다시 가축열차칸에 태워진 실카와 여자들은 며칠에 걸쳐 러시아의 보루쿠타 수용소로 이송된다. 수용자들은 국적도 다양했고 수용된 이유도 다양했다. 그곳에서도 또다시 혐오의 눈길을 받을까 두려워, 실카는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없었다.살아야 하는 이유수용소의 여자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서로를 격로하고 의지한다. 물론 싸움도 자주 일어나지만 대체적으로 아픔을 보듬으며 지낸다. 머릿수건에 자수를 놓으며 여성성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곳에 오기전 가족들과 함께했던 즐거웠던 추억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한다.같은 방 수용자가 아기를 낳으면 자신의 아기처럼 기뻐하며 생명의 탄생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실카 역시 마음을 나누게 된 친구 조시와 수용소 내부 병동에서 옐레나라는 여의사를 만나며 점점 살고자하는 의지를 불태운다.문득 아우슈비츠 생존자 빅터프랭클 박사가 떠오른다. 그 역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는 수용소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늘 세수를 하고 옷매무새를 점검하며 그들에게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보이려 애썼다고 한다.또한 아우슈비츠 문신가였던 랄레는 어떤가. 그 역시 수용소에서 만난 연인과의 사랑을 지킬 생각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고 끝없이 연인과 자기자신을 달래며 결국 살아남았다.극한의 수용소에서도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자하는, 그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부족한 것이 없다. 따뜻한 집도 가족도 전부 내 곁에 있다. 인간이니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과, 인간다운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이 소설은 러시아의 실카와 아우슈비츠의 실카가 번갈아 등장한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먼저 읽는다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속의 실카가 어떻게 되었냐는 독자들의 쇄도로 이 소설이 씌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허구로 설정된 등장인물들이 있기에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저자는 상당기간 실카의 인생과 보루쿠타 수용소를 취재하며 이 소설을 준비했다.나를 포함, 이 책을 읽은 이들의 삶에 대한 자세가 한결 더 감사하고 고귀해지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