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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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향으로 아버지를 살피러 내려간 딸 '나'는 자꾸만 자다가 일어나 사라지는 아버지를 찾는다. 아버지는 헛간에 쭈구려 앉아있기도 하고, 작은방 책상 아래서 잠들어 있기도 하다. 다가가 아버지를 살피는데 아버지의 잠든 얼굴에 눈물자국이 번져 있다.



수면장애를 겪는 아버지의 일상을 보살필 때마다 '나'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들은 소년 시절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겪는다.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외가로부터 받은 송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밭을 일구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는 소년 시절의 아버지. 종손이라 군대에 끌려가면 안 된다고 집안 어른들에 의해 검지도 잘린 채 살아가게 된다. 특히 전쟁 중 국군과 인민군이 밤낮으로 마을에 주둔할 때의 상황이 살벌하게 그려져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도 아버지는 살아남게 된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식들 대학 교육까지 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이들은 모난 이 하나 없이 잘 자라지만, 각자가 아버지를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는 시각은 차이가 있는데 작가는 이를 아주 잘 표현하였다.


아버지는 4남 2녀를 두었지만 종종 집을 비우곤 하셨다. 돈을 벌러 타지역으로 떠나 있었음을 작가는 큰 오빠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로 표현해 내었다. 둘째 오빠와 엄마에게는 녹음기를 건네 인터뷰 형식으로 아버지에 대해 기록한다. 또 나를 고모라고 부르는 조카의 편지에서도 할아버지 즉 '나'의 아버지에 대한 서술은 깊이가 남다르다.


또한 아버지의 옛 지인을 찾아가 인터뷰 형식으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묘사와 전쟁이 지나간 후 다시 재회했을 때의 서술이 너무나 실감 나고 아팠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김순옥 씨가 상당히 궁금했는데 결국 큰 오빠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그 궁금증이 풀린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과 아버지가 된 시간들의 묘사는 신경숙의 필력 속에 장엄하게 녹아 있었다. 자식들 먹여살리느라 치열했던 70년대의 한국사가 아버지의 삶 속에 고스란히 스몄다. 아버지가 끌어안고 살던 상실과, 딸을 잃은 나의 '상실'이 만나며 그제서야 가족과 삶을 바라보게 된다.



역경의 세월을 살아남았지만 아버지는 너무나 여리고 순한 말 그대로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그저 살아냈을 뿐이라고 덤덤히 말하는 아버지의 작은 몸피가 눈에 그려져 가슴이 아팠다. 결국 소설의 마지막 부분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남기는 말을 '나'는 노트북에 옮기는데,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눈물이 쏟아져 혼났다. 차라리 가부장적이고 무서운 아버지였다면 마음이 덜 아팠을까? 할 말이 없어도 내일은 아버지께 전화 한 통 걸어야겠다...





살아가는 을의 얼마간은 왜곡과 오해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왜곡되고 오해할 수 있었기에 건너올 수 있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이다. p62



탈진한 것처럼 보였던 아버지가 기운을 차려 겨우 들려준 말이 사는 일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되는 건 아니라고 해서. 돌아보고 뒤가 더 좋았으면 거기로 돌아가도 되는 일이라고 해서. 붙잡지 말고 흘러가게 놔주라고 해서. p92



세상의 기준은 이처럼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소. 필요에 따라 변화하지. 당연한 것 아니겠나. 그러니 신념이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p312



책을 통해 인간을 알게 되었지. 얼마나 나약하고 또 얼마나 강한지를 말이야. 한없이 선하고 끝 간 데 없이 폭력적이지.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고 불행과 대치하며 한생을 살다 간 사람들은 자취를 남기네. 모진 상황들을 견뎌낸, 흔적 말이야. 내가 책을 읽는 일은 그 흔적 찾기였는지도 모르겠어.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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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콥쌉쌀 2021-03-2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