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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하얀 표지에 둥실 떠오른 듯한 글자가 어쩐지 쓸쓸하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살이나, 홀로 지내다 고독사 한 사람들의 집을 청소하는 일을 한다. 특수청소업이라고 한다.
죽음의 흔적을 지우는 그가 써내려간 글은 표지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쓸쓸하지만 따뜻하고 섬세하다. 한문장 한문장 읽어내려가면서, 밑줄긋고 입안에서 몇번씩 곱씹을 만큼 작가의 필체는 무척 감성적이다.
■어떤 날은 이 세상의 온갖 알 수 없는 사연이 바람에 실려와 잎이라곤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든다. 그런 날은 작은 봉투 하나 버리는 일조차 버겁다.p27
이 책을 손에 쥔 우리는 그와 함께 어느 망자의 아파트 입구에 서 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냄새에 당황하지만 그는 익숙하다는 듯이 성큼 집안으로 들어선다.
사람의 생김새가 다르듯, 사람이 떠난 자리도 너무나 각양각색이지만 죽음이 남긴 흔적에 숙연한 마음이 드는건 그 어떤이의 죽음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의 집을 치우다 보면 망자의 습관, 삶에 대한 자세, 투병의 흔적 그리고 절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상황까지 아픈 마음으로 유추하게 된다.
■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p28
이렇듯, 작가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는 문장은 떠난 그들의 삶까지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
고인이 생전에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어떤 취미를 즐겼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의 목표와 의지까지 생을 마감하고 남은 흔적에서 우리는 그들의 고단했을 인생을 함께 느낀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문장 하나, 문학적 감성이 터지는 문장 하나 하나, 전부 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고인에 대한 예를 다하듯, 그의 문장 또한 정갈하고 정성스럽기 그지없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먼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님은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우린 남겨진 사람이 되어, 부모님의 흔적을 맞이한다.
또한 죽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잘살든 못살든간에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 차가운 사실은, 어쩌면 홀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을 위로했을지 모른다.
죽음이란 글자는 무섭고 쓸쓸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지지만, 작가의 글에 건조함이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자가 남기고 떠난 모든것들은 작가의 감성과 손을 거쳐, 생생하게 살아 촉촉한 수분을 머금는다.
오랜만에 문학적 감성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책을 읽었다. 아울러 죽음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의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사는 이 시간은 어떠한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다시금 마음을 정비하고 내일을 생각해 본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p101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p101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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