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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 ㅣ 숲속의 숲
자크 베르제 지음, 문성욱 옮김 / 읻다 / 2024년 2월
평점 :
지식은 순수한가.
독일어권 소설의 저자 설명을 읽을 때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부모는 신학자가 되길 원해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문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작가는...’ 주로 작가들은 ‘신학’, ‘법학’을 하다가 여전히 문학의 뜻을 포기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쓰다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낸 케이스가 많았다. 서유럽권에서 과연 20세기 초까지 신학과 법학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공부하는 인간 –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을 통해 그 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공부하는 인간>은 중세 말 서유럽에서 식자층이 당시 사회의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중세의 ‘학문’에 대한 연구를 설명하는 책이다. 여기서 ‘식자’는 학문을 진지하게 배우는 분류보다는 조금은 확장된 개념으로 당시의 지식의 주요한 언어인 ‘라틴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대학’이라는 교육기관과 그를 둘러싼 사회적 역학을 시작된 계기가 된 중세의 식자층을 살펴보기 위해서 작가는 지식에 관련한 ‘사람’의 유형, ‘언어’, ‘교육기관’, ‘가르침’ 등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하며 설명을 이어간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깨달은 재미있는 부분은 ‘중세’의 지식에 대한 열망은 마냥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인지 중세라면 오롯이 앎을 좇는 이들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중세도 학문의 기능성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 ‘신학’은 설득력있는 설교를 위해, ‘의학’은 아픈 이를 고치기 위해, ‘법학’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갈고닦는 것이라는 것. 그때의 순수학문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그래도 당시엔 ‘경제학’은 더 등한시 되었다는 지점은 역시 그래도 자본주의가 침투하기 전이다는 생각이 들어 덜 서운했던 거 같다. 당시 학문의 위상과 역할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학위라는 개념, 지식을 소유하는 집단 등으로 인해 식자들은 권력을 가지게 되어가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지금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지식과 관련한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구축되어왔는지 역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