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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은유 지음 / 읻다 / 2023년 5월
평점 :
한국 시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들을 인터뷰한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에는 다양한 배경의 번역가들이 등장한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번역’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펼쳤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해줬다. 해외문학을 좋아하고 주로 읽는 독자로서 번역은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야다. 번역을 흔히 이미 있는 작품을 옮겨쓰는 것 뿐이라고 대단치 않은 듯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이야말로 본 작가의 의도와 느낌 분위기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이야기를 다시 짓고 쓰는 예술 행위다. 그런 번역을 하는 ‘사람’인 번역가의 삶과 문학을 대하는 태도 등을 담는 인터뷰라 문학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 생활을 경험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경계에 위치한 이들의 정체성은 여러 차별적 상황을 경험했다는 안타까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이들이 치유의 방향으로 선택한 것이 문학이었고, 문학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치유받기도 했다는 것도 비슷하게 보였다. 이 점이 무척이나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총 6명의 번역가들은 총 6곳의 동네 책방에서 인터뷰가 진행된 점도 흥미를 끄는 지점이었다. 과연 어떤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등장할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의 간단한 이력을 찾으려고 본격적인 독서를 앞두고 천박하게 전체적으로 훑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는 알 수 없었고, 이 책은 단순히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다. 각각의 인터뷰이들의 번역과 문학, 본인의 정체성을 기반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번역가를 넘어서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언어를 옮기는 일은 어떤 작업일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 아닐까? 거리 위에서 간혹 멈춰서서 핸드폰 사진기를 꺼내 드는 사람들을 목격하면 자연스레 그들의 시선을 따라 올려다보게 된다. 시선의 끝에는 평소와 조금 다른 색으로 물들어진 하늘, 귀여운 모양을 띠고 있는 구름, 봄을 알려주는 만개한 꽃. 나도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꺼내어 같은 장면을 담는다. 한 번은 혼자 여행을 하던 중에 떠오른 밤하늘 달이 너무 예쁜데, 도저히 사진으로 담아내질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었다. 저 아름다운 장면을 어떻게서든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지나가는 낯선 이 누구라도 붙잡고 외칠 뻔한 적도 있었다. “저기요, 저 수상한 사람은 아닌데요. 뒤돌아서 저기 하늘의 보름달을 보세요. 너무 예뻐서요. 놓치기 아까워서 말씀드려요.” 예쁜 풍경을 보고 구태어 사진을 찍는 건 나중에 또 보고 기억하려는 마음도 있지만, 주로 사진을 지인에게 전달하며 예쁨과 귀여움, 재미있음 등의 다양한 감정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문학을 번역하는 이들의 마음도 이와 조금 닮아있다 생각했다. 내가 읽고 있는 소설이, 시가 다른 언어를 쓰는 이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 내가 읽었던 감동과 재미가 그들에게도 도달했으면 하는 마음. 은유 작가는 언어를 바꾸어 전달하는 이들을 인터뷰한 책의 제목을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로 정한 이유도 좋음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순수에 가깝다고 여겨져서가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