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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 ㅣ 고블 씬 북 시리즈
정지윤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평점 :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남은 자는 무엇이 필요할까. 상실 앞에 사람들은 다양한 선택을 한다. 슬픔으로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체념하거나, 분노에 휩싸여 복수를 꿈꾸기도 한다. 소설<세상 끝 아파트에서 유령을 만나는 법>은 가까운 미래의 세계에서 느닷없고, 의문스러운 이별 앞에 남은 자들이 모여 작당모의하는 이야기다.
소설은 텐서칩이라 불리는 감응형 생체칩이 상용화된 세상을 전제로 한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인체에 칩을 삽입하면, 현실 위에 증강현실이 펼쳐진다.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눈앞에 나타나는 가상의 표시로 길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거리를 걷으면 개인별 맞춤형 광고판이나 노랫소리가 별도의 장치가 없이도 들리고, 보이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가정한다. 아무래도 몸에 삽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라 거부 운동을 펼치는 세력도 등장한다. 이들은 생체칩 상용화에 반대운동을 펼쳐 생체칩 활용이 불가능한 ‘기술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조건으로 상용화를 받아들인다. 소설의 주요한 무대가 되는 ‘베니스 힐 아파트’는 전국에 몇 개 남지 않은 ‘기술보호구역’ 중 한 곳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수학 과외 선생님의 제안에서 시작한다. 베니스 힐 아파트에 사는 고등학생 요한은 절친한 친구 J를 잃고 방황을 한다. 성적이 바닥을 치자 수학 과외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쌤(요한은 과외 선생님을 쌤이라 부른다.)이 좀 특이하다. 요한의 주변 어른들과 사뭇 다르다. 계속 들쑤신다. 친구 J의 죽음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지만, 경찰에선 별다른 수사 의지도 없기에 사고사로 마무리되었다. 과외 쌤은 자신이 도와줄테니, 죽음의 내막을 가설을 세워가며 파헤쳐보자고 요한의 마음을 흔든다. 요한은 쌤의 제안에 승낙한다. 소설은 증강현실이 상용화된 세상에서 과외쌤과 고등학생, 그리고 과외 쌤의 검정개 재즈(개가 말을 함. 검색능력도 좋음)와 함께 친구J의 죽음의 내막을 파헤친다.
소설이 요한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요한은 꽤나 과외쌤과 재즈에게 마음을 쓴다. 조잘대는 재즈와 낯간지러운걸 잘 참지 못하는 요한, 다소 미스터리한 과외쌤 이들의 관계가 꽤나 귀여워 흐믓해진다. 나름의 역할분담으로 팀워크를 선보이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면 결말에 도달한다. 과연 그들은 어떤 답을 얻어냈을지...
있을 법한 소재를 활용해 몰입도 높은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것이 가장 돋보였다. 머리말부터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완벽한 소설. 정지윤 작가는 독립출판 <악당은 모두 토요일에 죽는다>로 알게 된 작가다. 단편 때도 흥미로운 소제로 탄탄한 이야기를 구성했었는데, 이번 작품도 만족스러웠다. 스릴러 장르로 앞으로 무척 기대되는 작가 중 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