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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거래 연구소
도선우 지음 / 라곰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서평단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고달'이라니. 이름처럼 정말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내세워 억지 감동을 주려는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는 이야기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고달의 인생은 이름만큼이나 다사다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달 본인은 자신의 삶이 그렇게까지 고달프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고통에 익숙해지다 못해 이제는 무뎌져 버린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힘든 상황을 겪어왔기에 자신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아왔는지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달이 '운명 거래 연구소'의 정회원이 되고, 고달과 그에게 악영향을 끼쳤던 사람들의 운명이 재분배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후의 전개는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만큼 통쾌했습니다. 특히 운명이 재분배되었다고 해서 고달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거나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는 식의 전개가 아니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운명이 바뀌었다는 설정을 이용해 지나치게 극적인 보상을 주었다면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졌을 것 같은데,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홍길동을 생각해 보면, 악덕한 부자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행동은 과연 선일까요, 악일까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분명 선한 행동이지만, 누군가의 재물을 약탈한다는 행위 자체는 악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의 행동 안에도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한 행동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어 선에 가깝다고 판단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준에도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 안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만약 그 기준이 끝까지 모호하게 남아 있었다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나름의 기준을 먼저 세워두었기 때문에 이후의 전개도 납득하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고달픈 인생을 통해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는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예상과는 달랐습니다.
고달의 다사다난한 인생을 따라가며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고, 운명이 재분배되는 과정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단순히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해지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처음의 걱정과 달리 억지스러운 감동보다는 통쾌한 전개와 흥미로운 설정이 기억에 남았고,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