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닭털 같은 나날은 류진운이라는 중국 작가가 쓴 세편의 소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작가는 1958년생이고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이 1992년에 발표된 것 같은데, 작가의 나이 서른 다섯(우리식 나이로)일 때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나도 우연히도 서른 다섯이다.

이렇게 나이를 따지는 것은 이 소설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1942년을 돌아보다 溫古一九四二年 ' 때문이다. 돌아 보다로 번역된 溫古라는 한자말이 책을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옛것을 따뜻하게 하다'?
옛것을 따뜻하게 해야 온기가 흐를 것이고, 온기가 흘러야 살아있는 것이다.
지금 무엇인가를 혹은 어떤시간들을 돌아본다는 것은 지금 그것들을 따뜻하게 덥혀서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내 나이와 같을때 돌아본 50년전, 작가가 덥혀서 살아있게 만든 1942년을 만나면서, 1942년 중국의 하남성일대의 모습과 사람들은 나에게도 살아있는 느낌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작가처럼 우리의 50년전을 돌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50년전이면 1954년인데, 그때 우리나라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상황이었을까? 6.25전쟁이 바로 전 해에 휴전이 되었을것이고......
다른 사건들은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저 몇년후 4.19의거가 있었겠구나 정도뿐?( 사실 전쟁과 휴전이라는 압도적인(?) 사건이 있는데 다른 사건들이 무엇이 떠오르겠는가?) 어찌되었건 나의 기억속에는 우리의 1954년이 따뜻하게 온기를 갖고 있지 못한것이다. 왜 나는 지금 우리의 1954년을 돌아볼 수 없을까?

“당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백악관, 다우닝가 19호, 크렘린 궁, 히틀러의 지하 벙커와 지휘부, 일본의 동경이었으며,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곳은 중경重慶의 황산黃山에 있는 위원장의 관저였다. 그처럼 장엄하고 화려한 곳에서, 말쑥하게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며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던 소수가, 세계 대다수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러한 세계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질 작정이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와 더러운 얼굴을 하고, 도처에 굶어 죽은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는 하남성의 황량한 재해구역으로 돌아가려 한다. 왜냐하면 나는 1942년의 재난 속에 처했던, 바로 그 천한 농민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 <1942년을 돌아보다> 中 (p210) 에서

작가도 처음에는 1942년의 굶주림과300만명의 죽음이 큰일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능청스럽게 말한다. 그것들보다 송미령,처칠,히틀러, 스탈린그라드의 대혈전등을 1942년에 일어난 더 큰 사건으로 떠올린다. 중심에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고 보여지는 사람들과 사건들들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 중심이 아닌 우리의 옛날을 따뜻하게 바라 볼수 없다.그래서인지 작가는 당시의 기록보다 작가 주변의 친척들의 삶속에서 기억된 1942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나 역시 중심지의 시각에서만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것은 아닌지, 역사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것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것은 아닌지...... 난 중심지에 살고있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니 그것들은 나의 바라봄일 수 없고 내가 그것들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도 없다. 따라서 그것들은 나에게 살아있게 다가올 수가 없다.

'1942년을 돌아보다 溫古一九四二年 '을 읽는 내내 '옛것을 따뜻하게 하다'라는 말이 화두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어떻게 무엇들을 따뜻하게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나도 작가처럼 자신의 외할머니와 주변의 친척들로부터 지나간 과거의 옛날을 덥히기 시작하면 우리의 옛것을 따뜻하게 덥혀서 살아있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옛것을 덥히고 돌아 보는 방식에 따라 우리의 오늘날의 생각과 행동은 결정된다. 왜 이렇게 지금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까? 이를테면 왜 80년 광주학살에 대해서 너무나 다른 생각을 사람들이 갖고 있을까? 그 이유들중의 하나를 이 소설에서 찾은것 같다.

“백성들이 죽어도, 땅은 역시 중국인 것이다. 만약 군인이 굶어 죽으면, 이 나라는 일본군에게 접수되어 관리될 것이다.”
이 말이 바로 장개석 위원장의 속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제를 굶어 죽어가는 기아 난민들에게 그대로 묻는다면, 이 문제는 ‘차라리 굶어 죽어 중국 귀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굶어 죽지 않고 매국노가 될 것인가?“라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1942년을 돌아보다」, p.292.)

장개석 위원장의 생각, 기아난민들의 생각 어느 입장에 서 있는가? 옳고 그름을 떠나 나의 입장은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서로 물어 보자.
'당신의 입장은 어디에 서 있는가?'

따뜻하게 하고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소설을 만났다. 번역하신분, 책내신 출판사, 나에게 이책을 선물해 주신분 모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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