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놓아줘 - 디그니타스로 가는 4일간의 여정
에드워드 독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달의시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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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전혀 낯선 사람들이 만나 함께 동반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죽음조차 홀로 가지 못하고 누군가와 함께 간다는 선택을 하다니

한편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불치병을 앓고 있고 이제 남은 것이 죽음과도 고통 뿐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내 손을 놓아줘] 소설 속에는 죽음의 여정을 함께 하는 아버지와 세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이 나선 길 끝에는 스위스 안락사 기관 '디그니타스(Dignitas)'가 기다리고 있지요.

아버지는 루게릭 병을 앓고 있습니다.

온몸이 점점 마비되어가는 상황 속에 영국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나흘 간의 여정을

막내아들 루와 함께 떠나게 됩니다.

이복쌍둥이 형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가 소원하죠.

어느 가정이나 부자관계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특히 이토록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아버지와 지내왔다면 말이죠.

소설을 읽으며 제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저도 저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척 서먹합니다.

은퇴 후 시골에 집을 짓고 살고 계시는 아버지 댁으로 아이와 함께 찾아뵙기는 해도

아버지와 개인적으로 통화하는 일은 아주 드물지요.

어린 시절 가족에게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던 아버지가 손녀를 향해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 정말 저분이 제 아버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나이가 드시니 새삼 가족에 대한 애정이 솟구치시는 걸까? 아님 여지껏 표현을 못하고 사신 걸까?

아리송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만약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시더라도 불치병으로 고통 받고 계시다면

제가 아버지의 의료 중단을 손 놓고 지켜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물며 안락사를 전제로 나흘 간의 여행에 동참한 아들들의 심정은 어떨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마음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아직도 그 모든 것에 갇혀 있다.

그들의 성격과 본성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태어났는지 때문에.

하지만 난 매어 있지 않다. 그렇다, 난 자유다. 난 할 수 있다. 난 밧줄을 잘라낼 수 있다.

난 운이 좋다. 오늘은 살아 있기에 아주 아름다운 날이니까.


루는 정말 자유로워진 걸까요?


받아 든 책의 두께가 압도적입니다.

오랜만에 읽는 소설, 그것도 영미쪽 소설은 생경하다 싶을 만큼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사실 영미소설은 초반부가 꽤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서사에 공을 들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뜻 표지를 넘길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의외로 첫 장면부터 폭 빠져들었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아버지와 세 아들들의 나흘 간의 여정이 시종 즐겁게 읽혔습니다.

마치 제가 그들의 낡은 밴 뒷자리에 앉아 그들의 티키타카에 동참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코로나와 무더위로 집콕만하던 제게 영국에서 스위스로 이어지는 그들의 여정은

무척 색다른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손을 놓을 수 없는 소설 [내 손을 놓아줘]를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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