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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딜레마 - 국가는 정당한가
홍일립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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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저작들과 출판물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치 오랜 장마 끝에 드러난 빛나는 햇살처럼 진정으로 놀랄만한, 시의적절한 작품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의 딜레마’(사무사책방)였다.

 

이 책의 저자인 홍일립 박사는 몇 년 전 ‘인간 본성의 역사’라는 기념비적인 저작물을 출간하였다. ‘국가의 딜레마’는 ‘인간 본성의 역사’에 이은 논리적 정합성과 연계성을 갖춘 연구서로 판단된다. 플라톤의 말처럼 국가는 인간의 확대판인데, 저자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 위에 구축된 구조물인 국가를 날카롭게 파헤친 것이다.

 

이미 ‘인간 본성의 역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저자는 방대한 지식과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의 정당성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비판하고 있다. 동시에 저자는 소수의 사악한 권력 엘리트와 다수의 선량한 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역시 지양하고 있다.

 

저자는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존 F. 케네디의 연설 내용에 대해,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고상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하면서, “국민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요구하기 전에 국가는 항상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한다”고 통렬하게 일갈했다. 이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기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불철주야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정치인들, 관료들, 대학의 연구자들, 그리고 국가 시스템의 들러리 역할을 하면서 권력층의 교묘한 편 가르기 술수(divide and rule)에 길들여진 신민들과 더불어 정치적 니힐리즘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이 책의 필독을 권하고 싶다. 국가와 민주주의 시스템의 적나라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지적 희열과 흥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태항(모스크바국립대·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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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
게리 윌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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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랩을 노래하듯 연설하면서 미국인들의 이목과 감성을 모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정신적, 정치적 사표로 링컨을 말해 왔다. 물론 루스벨트나 케네디, 클린턴 등 역대 민주당 대통령들에 대한 존경심도 표해 왔지만. 

링컨은 오바마 대통령 등장으로 새삼 주목을 받았는데, 단지 노예해방 때문은 아니다. 오바마의 연설솜씨 때문에 새삼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 등 명연설이 환기된 측면도 있다. 짧고 명쾌함 그리고 유려한 흐름은 오바마가 닮고 싶어 하는, 그리고 어느 정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연설력이다. 

이 책은 흔히 272단어로 알려진 링컨의 연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치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역사적 르뽀라고 할 수 있고, 정교한 검증과정은 웬만한 학술논문을 뺨치고 남는다. 풀리처상 논픽션부문을 수상했으니 긴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게리 윌스는 이제 노학자이다. 그는 <예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바울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등으로 신학비평가로도 국내에 알려진 학자인데, 과거 역사를 고증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실사구시 정신이 탁월한 분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올바르게 찾아내는 치열한 눈과 귀를 가진 분이다. 흔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개코라고 하는데, 개는 시력이 약하고 대신 후각과 청각이 탁월하다. 저자는 역사적 진실을 훓어내는 탁월한 후각을 가진 것같다. 

이 책에서 알게 되는 많은 진실 중 소개할만한 것은 이렇다. 연설의 기본이다. 명쾌하게(대개는 짧게) 말할 수 없다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장황한 것은 사실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티즈버그 묘지 봉헌식 식순에서 링컨 대통령 연설은 추도연설이 아니었다. 흔히 봉헌사라고 

해서 짧게 언급하는 자리였다. 흔히 추도식에서 봉헌시를 낭송하듯이 짧은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추도연설 본론은 에버렛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연설가가 나섰으며, 무려 2시간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다 들은 2만여 청중과 링컨. 그 뒤에 대통령의 봉헌사가 시작된 것이다.  

링컨은 역사적 과정이나, 남북전쟁, 그리고 해당지역의 치열했던 전투 등등을 앞 사람의 연설에 넘기고, 아주 간결하고 오히려 추상적인 그러나 수려하고 낭만적인 짧은 연설을 들려 준다.  

당시 언론은 이 연설을 전날 있었던 다른 연설들과 묶어서 주변 기사로 처리했다고 한다.

게리 윌스는 서양문화에서 장례연설의 기원을 이룬 고르기우스, 페리클레스 등을 불러들여 링컨 연설의 뿌리를 보여준다. 압운과 힘찬 반복의 계승, 그리고 에버렛 시대를 뛰어넘는 짧은 연설로의 진화 등등. 

이 책을 통해서 링컨 대통령의 명연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탁마로 이뤄진 노작이며, 특히 그가 어휘의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링컨은 하나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정교한 언어구사의 중요성을 실천한 지도자로 묘사된다. 

또 한가지. 링컨시대에 노예해방에 대해서 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사상이나 주장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았지만, 링컨은 현실적인 경로를 찾으려고 했으며 남북의 통합을 위하여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연설로 노예해방의 1단계를 성취하는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노예해방 1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이후로 흑백결혼의 불법성이 사라졌고(불과 1960년대였지만), 또 흑인들의 투쟁과 양심적 백인들의 지원으로 격리정책(거주, 교육, 교통, 의료)이 근래에 와서야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 어쩌면 역사에 비약이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냉엄한 현실과 얼마나 치열하고 동시에 균형을 잃지 않는 정면대결을 벌였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역사적 진보는 그래서 힘든 것이라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오바마시대. 게리 윌스의 탁월한 논저를 통해서 링컨의 천재적 언어능력과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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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 - 버락 오바마 연설문 2002~2008 영어 원문 수록본
버락 H. 오바마 지음, 모린 해리슨.스티브 길버트 엮음, 이나경 옮김 / 홍익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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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미국사회에 이름을 알리게 된 중요한 연설이 있었다. 하나는 2002년 10월 시카고 페더럴플라자에서 열린 이라크전쟁 반대집회에서 한 연설이었다. 

“저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전쟁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경솔한 전쟁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께서는 전쟁을 원하십니까? 엑손사와 모빌사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통해 중동의 석유로부터 벗어납시다. 우리가 기꺼이 가담할 전투는 이런 것들입니다. 무지와 편협, 부패와 탐욕, 빈곤과 절망과의 싸움 말입니다.”

또 하나는 2004년 7월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한 기조연설이었다. 보스턴 기조연설은 민주당 지지자는 물론이고 공화당원들에서도 오바마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연설에서 미국 중산층과 서민이 처한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열정적으로 제기하면서,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민주당의 미국과 공화당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이 있을 뿐입니다. 흑인의 미국, 백인의 미국, 라틴계 미국, 아시아계 미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미합중국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오바마는 전통적인 민주당후보들과는 달리 종교적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에는 진화론보다 천사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든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언어를 지워내 버린다면 미국인들이 개인적인 도덕성과 사회적 정의를 이해하는데 사용하는 이미지와 용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크리스천이란 단어를 신앙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가 아니라 정적(政敵)이란 의미로 여기는 진보주의자들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아 국민의 삶, 미국인의 삶 속에서 종교의 힘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크나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006.6.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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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버락 H. 오바마 지음, 홍수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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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아버지가 케냐에서 사고로 숨지고 나서 훗날 직접 케냐의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오랫 동안 울었다고 한다. 그에게서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내가 맹렬하게 야심을 좇았던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말 없는 욕구가 내면에 쌓이게 되었고, 아버지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나의 야심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The Audacity of Hope』담대한 희망, 2006)

오바마에게는 백인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이 지대한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흑백을 차별하는 것에 눈물지은 소녀였으며, 그녀의 친아버지는 캔자스의 벽지 엘도라도 출신이었지만 60년대 미국에서 딸의 흑백결혼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DREAMS FROM MY FATHER』(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한 흑인 젊은이가 스스로의 집안과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방황의 궤적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바도 있다. 이책의 2004년 개정판 <서문>에 “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다른 책을 썼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 책은 이미 떠나간 아버지를 생각하는 책이 아니라, 변함없는 존재로 내 곁에 함께 있는 어머니를 찬양하는 책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는 생부(生父) 버락 후세인 오바마의 이름자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케냐 출신 아버지의 혈통에 따라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규정된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일하던 중 미국인들의 도움으로 하와이대에 유학을 왔다가 오바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능력을 발휘하여 하버드대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은 너무 짧게 끝났고 오바마는 오랜 세월 동안 아버지라는 존재와 고된 씨름을 하게 된다.

오바마가 장성해갈 무렵에 하루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싸우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출근길을 두려워 하게 된 이유를 놓고 외할아버지가 몸을 떨 정도로 화를 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그 남자가 흑인이었단 말이예요”라고 말한 것때문이었다. 오바마의 정체성 위기는 자신이 가장 안락하게 느껴 왔던 피난처이자 최후 보루였던 조부모에게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두 분은 나를 위해서 온갖 것들을 희생하고 또 희생했다. 당신들이 가진 모든 희망을 나의 성공에다가 쏟아부었다. 나를 향한 두 분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는 구석은 여태까지 단 하나도 없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같았다. 그런데 피부색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저자 오바마는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느꼈던 거리감, 케냐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선 선구자라는 이미지와 어떤 환상들, 그리고 이복 누나에게서 전해들은 아버지의 낭패와 이로 인한 자신의 실망감을 꼼꼼하면서도 실감나게 엮어 간다. 한편의 성장소설과도 같다. 또한 어머니가 인도네시아인과 결혼하여 현지에서 함께 생활한 경험과 자신이 직접 아버지의 땅 케냐를 방문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은 그가 다문화적 세계관을 키워 온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이 오늘날 다문화의 중병(重病)을 앓고 있는 미국에서 그 어떤 정치인보다 다문화적 세계의 중첩된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오바마는 1983년 시카고로 가서 가톨릭계 공동체운동에 참여한다. 그는 현지 흑인 중산층, 서민의 성취와 좌절 그리고 미래의 두려움을 읽었다. 또한 미혼모의 딸이 미혼모가 되어 젖먹이 아이에게 포테이토칩을 먹이는  악순환을 목격한다. 그는 여기서 열악한 교육환경, 만연한 실직과 공포, 주거문제 등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보고 배우면서 일자리 만들기와 같은 지역공동체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이때의 경험이 오늘날 오바마의 모든 연설에 배여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현실감의 초석이 되었다.  

시카고에서 오바마가 만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아마도 트리니티교회 라이트 목사일 것이다. 그는 폴 틸리히와 라이홀드 니이버 등을 연구한 목회자였다. 오바마가 당시에 감명을 받았던 이 목사의 설교제목 중 하나가 ‘The Audacity of Hope(담대한 희망)’이었다.

오바마의 이 책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등장하기 이전의 전사(前史)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계 흑인 아버지를 둔 한 청년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방황하고, 또한 희망을 찾고자 얼마나 갈구했는지를 진솔하게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놀랍다. 그 꾸밈 없는 진정성에서 흑백문제를 정면에서 돌파해 나가는 기백을 느낄 수 있다. 

그는 또한 상대방을 인정하는 태도에서도 좀더 개방적일 것을 강조한다. 보수세력에 대해서나, 해외의 적대적 세력에 대해서나 마찬가지다.

“레이건이 앞장서 외친 ‘보수혁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그는 민주당 정책수립자들이 파이를 키우는 일보다 파이를 나누는 일에 더 집착했고, 그동안 진보적인 세력이 추진한 복지정책은 자기만족에 빠진 채 지나치게 관료화되었다고 지적했다.”
(『The Audacity of Hope』담대한 희망,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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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의 신념
존 매케인 지음, 지소철 옮김 / 현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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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이 골절된 채 추락한 매케인 중령은 전쟁 영웅으로 돌아와 지금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 책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통해서 그가 어떤 정신적

유전자를 이어 받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들을 압축한 것이며, 간단한 감평을 덧붙인 것이다. 

  “지대공 미사일은 날아가는 전신주처럼 보였고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존 매케인이 조종한 A-4기는 목표물을 향해 급강하하다가 왼쪽 날개에 지대공 미사일을 맞았다. 당시 하노이는 옛 소련의 지대공미사일로 촘촘한 방어망을 형성했는데, 매케인 스스로가 “2차대전 이후 가장 가공할 광역 방공망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한 곳이다.

해군소속 조종사 매케인 중령은 1967년 통킹만 근처에 있던 미 항공모함 오리스카니호에서 출격하여 북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강타하는 ‘Operation Alpha Strike’(작전명)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그는 비상탈출을 시도하다가 두 팔과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었으나, 막판에 낙하산이 펴지고 호수에 떨어지는 바람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명조끼는 저절로 펴지는 것이 아니다. 두 팔이 골절되어 구명조끼 장치를 풀 도리가 없었다. 물속에서 두 번째로 호수바닥에 닿았을 때 한쪽 다리로 치고 올라오면서 그 틈에 이빨로 고리를 풀었다.

그는 체포된 후에 생존이 불확실한 상태로 방치되었다. 매케인은 병원에 데려갈 줄 것을 요청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싸늘한 응답을 들었다. 이런 치명적인 상황에서 그의 생명을 연장시킨 것은 아버지란 존재였다. 그의 부친은 당시 유럽주둔 미해군사령관이었다.

“당신 아버지가 해군제독이라며? 자, 이제 병원으로 데려간다.” 이 순간 매케인은 맘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아버지께 신의 은총이!”

1967년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이다. 그러나 당시 6세였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였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버지니아 주정부가 다른 인종과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던 것이다. 1961년생으로 알려진 오바마는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의 결혼으로 하와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60년대의 미국은 전체 주 가운데 절반 가량이 흑백 결혼을 중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매케인 중령은 하노이에서 베트남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반 동안 수감되었다. 그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을 총괄하는 태평양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자신의 아들을 앞서 붙잡힌 다른 조종사들보다 먼저 석방되도록 애쓴 흔적은 없었다. 아들 매케인도 <미군 전쟁포로의 행동수칙>을 목숨을 걸고 지켰다.

1. 나는 조국과 우리 삶을 지키는 군에서 싸우는 미국인이다. 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
2. 나는 절대로 내 자신의 자유의지를 굴복시키지 않는다. 내가 지휘관이면 내 지휘
  아래 있는 병사들이 저항할 수단이 남아 있는 동안 그들을 굴복시키지 않는다.
3. 내가 생포되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저항한다. 나는 탈출하려는 모든 노력을 다
   하고 다른 이들이 탈출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돕는다. 나는 적에게서 가석방이     나 특별한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4. 내가 전쟁 포로가 되면 내 동료 포로들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 ... (중략)
5. 내가 전쟁 포로가 되면 심문에서 이름, 계급, 군번, 생년월일 이상의 답변을 피한다.
   나는 조국과 동맹국을 배신하거나 그 대의를 해치는 말을 구두나 서면으로 하지
   않는다.
6. 나는 내가 자유를 위해 싸우며, 내 행동에 책임을 지며, 내 조국을 자유롭게 하는      원칙에 헌신하는 미국인임을 잊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미합중국을 신뢰한다.
 
이처럼 완고한 수칙이 만들어진 것은 한국전쟁 휴전 이후 미군포로들이 고국송환 대신 중국행을 택하면서 미 군부가 충격을 받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매케인과 함께 포로생활을 했던 미군조종사들은 이 포로수칙을 지키기 위해 불가능한 탈출을 감행하거나 고문에 저항하다가 몇몇은 현지에서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매케인은 동료장교들의 불굴의 정신을 지켜보며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붙잡혀온 순서대로 나가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日帝와 싸운 할아버지, 공산주의와 싸운 아버지
존 매케인의『FAITH OF MY FATHERS』(아버지들의 신념)과 버락 오바마의『DREAMS FROM MY FATHER』(내 아버지로부터의 꿈)는 오는 11월 선거에서 차기 미국대통령이 될 누군가의 정신적 DNA를 엿볼 수 있는 자서전이다.

매케인의 친할아버지는 호치민 군대의 대미 선전방송에서 “그의 할아버지 존 S 매케인 제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주둔 항공모함 사령관으로서 일본군에 맞서 정당한 전쟁에 참가했다”고 추켜세울 정도로 이름난 해군장성이었다. 그는 일본천황의 함상 항복조인식에도 참여하였지만 귀국한 직후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죽어서 해군 사성장군으로 추증되었는데, 2차대전 당시 일본 해공군과의 접전에서 거둔 공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필리핀 전역에서 ‘Big Blue Blanket(푸른색 거대담요)’ 작전을 성공시켰다. 미군기가 루손에 있는 일본군 비행기지를 담요로 덮어씌우듯 24시간 공중봉쇄하면서 일본 비행기 200여대를 파괴한 것이다. 이로써 미군의 민도로 공략과정에서 루손의 일본군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베트남 사이공 공습에서 하루에 4척의 일본군 호위함을 타격하고 69척의 전함을 침몰, 파손시키는 기록적인 전과를 거두었다.  

역시 해군이었던 매케인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잠수함을 이끌었다. 그는 잠수함 거넬호의 함장으로 북아프리카 진공작전(‘토치작전’)을 성공적으로 지원하고 귀환하던 중 엔진고장으로 생사의 기로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잠수함은 나치 U보트와 전투기가 깔린 해역을 뚫고 영국기지까지 생환하였다.

또한 한반도 남단 해상까지 진입하여 잠행하면서 일본 수송선을 공격, 침몰시켰다. 그의 잠수함은 일본구축함과 잠수함의 집요한 추격을 받았다.  한번은 커넬호가 배터리와 이산화탄소 흡수제의 고갈이라는 한계상황에 달하여 수장(水葬)의 고비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는 정확한 판단과 대담한 결단으로 대원들을 몰살 위기에서 구하였다. 이 공훈으로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일본이 항복하자 잠수함 덴투다호를 이끌고 토쿄만에 입성하였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축함 세인트폴호의 부함장으로 다시 참전하였다.

매케인 부친은 대서양함대의 육해공사령관으로 있을 때 도미니카 침공작전(Operation Steel Pike One)을 지휘하였다. 이 작전은 국제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그들(공산주의자)은 당신(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존중하고, 강할 때 스스로 조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며 군사적 대응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는 또한 베트남 패전원인에 대해서도 북베트남 본토침공을 반대한 당시 미국 국내여론과 하노이‧하이퐁에 대한 폭격을 제한했던 존슨 행정부의 처사를 통탄스러워 했다고 한다. 

매케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무엇일까? 매케인 3대는 다혈질 기질을 공유하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매케인 3대는 생도 시절에 학점이 좋지 않았고, 규칙을 잘 어겨서 벌점도 많았다고 한다. 성적순은 할아버지가 하위 25%에 들었고 아들과 손자는 거의 꼴찌였다.

매케인에게 해군으로서의 용기와 꿈, 그리고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뿌리는 할아버지였다. “해군에서 가장 솔직하고 멋있는 욕쟁이”로 통했던 할아버지는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괴짜였다.

할머니는 언젠가 할아버지에게 잡지에서 읽은 위궤양치료법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식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소리쳤다. “의사한테는 내 돈 십원 한 장도 안돼. 그럴 돈 있으면 노는데 전부 쓸거야.”

그의 할아버지는 52세에 파일럿 자격증을 받았다고 한다. 조종훈련과정 2주 동안 비행기를 5대나 부수면서 자격증을 만득(晩得)한 것이다. 그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열정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케인 아버지는 동료생도들보다 작은 체구, 어린 나이로 해사에 입교하여 생도시절에 어려움이 많았다. 성적도  504명 중 497등을 할 정도로 부진한 편이었다. 그러나 매케인 아버지는 태평양 총사령관이 되었고 살아서 사성(四星) 제독이 되었다.

매케인 본인은 어린 시절에 특이한 기질을 드러냈다. 그는 두세살 때 화가 나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숨을 참았다고 한다. 원인 모르게 아이가 까무러치는 것에 놀란 부모는 의사에게 상담을 받았다. 이후로 어린 매케인이 화를 내기 시작하면 의사의 처방대로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처넣었다고 한다. 강제로 숨을 쉬게 하는 물리요법(침수치료)이었던 것이다.  

매케인은 해사 시절에 벌점이 누적되어 두차례나 퇴학당할뻔했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 매케인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접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방탕아라는 평판을 받았던 장교들이 - 사실 아버지도 그랬으므로 -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난국에 대처하고, 험담을 퍼뜨린 사람을 당황스럽게 할 정도로 용기와 비상함을 드러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나도 그런 인물일 거라고 기대했다.”

매케인은 하노이에서 절망에 빠졌을 때 “다리를 절뚝거리는 패배자인 내가 나의 존엄성에 대해 남은 것이라곤 아버지들의 신념”이라고 믿었다. 그는 모험적 삶을 사는 어떤 유전적 기질에 이끌렸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정직과 명예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매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과 제독의 후예다운 용기를 이어 받았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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