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
게리 윌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바마는 랩을 노래하듯 연설하면서 미국인들의 이목과 감성을 모았다. 오바마는 자신의 정신적, 정치적 사표로 링컨을 말해 왔다. 물론 루스벨트나 케네디, 클린턴 등 역대 민주당 대통령들에 대한 존경심도 표해 왔지만. 

링컨은 오바마 대통령 등장으로 새삼 주목을 받았는데, 단지 노예해방 때문은 아니다. 오바마의 연설솜씨 때문에 새삼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 등 명연설이 환기된 측면도 있다. 짧고 명쾌함 그리고 유려한 흐름은 오바마가 닮고 싶어 하는, 그리고 어느 정도 닮았다고 할 수 있는 연설력이다. 

이 책은 흔히 272단어로 알려진 링컨의 연설이 나오게 된 배경과 상황을 치밀하게 추적한 일종의 역사적 르뽀라고 할 수 있고, 정교한 검증과정은 웬만한 학술논문을 뺨치고 남는다. 풀리처상 논픽션부문을 수상했으니 긴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게리 윌스는 이제 노학자이다. 그는 <예수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바울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등으로 신학비평가로도 국내에 알려진 학자인데, 과거 역사를 고증하고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실사구시 정신이 탁월한 분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올바르게 찾아내는 치열한 눈과 귀를 가진 분이다. 흔히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개코라고 하는데, 개는 시력이 약하고 대신 후각과 청각이 탁월하다. 저자는 역사적 진실을 훓어내는 탁월한 후각을 가진 것같다. 

이 책에서 알게 되는 많은 진실 중 소개할만한 것은 이렇다. 연설의 기본이다. 명쾌하게(대개는 짧게) 말할 수 없다면,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장황한 것은 사실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티즈버그 묘지 봉헌식 식순에서 링컨 대통령 연설은 추도연설이 아니었다. 흔히 봉헌사라고 

해서 짧게 언급하는 자리였다. 흔히 추도식에서 봉헌시를 낭송하듯이 짧은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추도연설 본론은 에버렛이라고 하는 당대 최고의 연설가가 나섰으며, 무려 2시간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다 들은 2만여 청중과 링컨. 그 뒤에 대통령의 봉헌사가 시작된 것이다.  

링컨은 역사적 과정이나, 남북전쟁, 그리고 해당지역의 치열했던 전투 등등을 앞 사람의 연설에 넘기고, 아주 간결하고 오히려 추상적인 그러나 수려하고 낭만적인 짧은 연설을 들려 준다.  

당시 언론은 이 연설을 전날 있었던 다른 연설들과 묶어서 주변 기사로 처리했다고 한다.

게리 윌스는 서양문화에서 장례연설의 기원을 이룬 고르기우스, 페리클레스 등을 불러들여 링컨 연설의 뿌리를 보여준다. 압운과 힘찬 반복의 계승, 그리고 에버렛 시대를 뛰어넘는 짧은 연설로의 진화 등등. 

이 책을 통해서 링컨 대통령의 명연설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탁마로 이뤄진 노작이며, 특히 그가 어휘의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링컨은 하나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는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정교한 언어구사의 중요성을 실천한 지도자로 묘사된다. 

또 한가지. 링컨시대에 노예해방에 대해서 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사상이나 주장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았지만, 링컨은 현실적인 경로를 찾으려고 했으며 남북의 통합을 위하여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연설로 노예해방의 1단계를 성취하는 현실주의자였음을 보여준다. 

노예해방 1단계를 거쳤기 때문에 이후로 흑백결혼의 불법성이 사라졌고(불과 1960년대였지만), 또 흑인들의 투쟁과 양심적 백인들의 지원으로 격리정책(거주, 교육, 교통, 의료)이 근래에 와서야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 어쩌면 역사에 비약이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책을 보면,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 냉엄한 현실과 얼마나 치열하고 동시에 균형을 잃지 않는 정면대결을 벌였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역사적 진보는 그래서 힘든 것이라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오바마시대. 게리 윌스의 탁월한 논저를 통해서 링컨의 천재적 언어능력과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다시 한번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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