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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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와 함께 떠나는 사랑의 정의 찾아보기] 

 

사랑이란 무엇일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을, 수많은 장소 중에 그곳에서, 수없이 긴 시간 중에 그때 만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분명한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우연일 뿐인 그 사건이 그들에겐 필연적인 운명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믿지 않으면 허황될 뿐이지만, 믿는 사람에겐 존재의 이유가 되는 신앙과 닮아 있다. 사랑이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지만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은 운명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은 운명으로 바꾸어진 우연이라 말하기도 한다.

 - 사랑의 발견 中 -

 

사랑은 강한 동질성을 기초로 확장된다고 한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대답하지 않아도 동의하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하기보다는 격랼하고 가슴 아프게 서로의 차이점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처럼 '원래 하나였던 반쪽을 다시 찾는 것' 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존재였던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대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런 이유로 아름다움과 함께 살을 여미는 아픔이 동반되는 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사실 사랑이란 단어에 정의를 내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사람마다 그 방식의 차이가 다르고 그 차이는 곧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살아온 환경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상대방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애초에 사랑이란 무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무모함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을 무엇으로 또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애초에 답을 찾을 수 없는 그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 에쿠니 가오리가 책[반짝반짝 빛나는]과 함께 동참한다.

 


 

 

"그들은(은사자)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마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 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 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 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 위에 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 P 125~6

 

책 [반짝 반짝 빛나는]는 알콜중독에 정서불안이라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쇼코와 호모 남편 무츠키, 그리고 무츠키의 동성애인인 곤. 그들, 즉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범위에서 멀리 벗어난 듯 한 사람들, 즉 은사자들의 사랑이야기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이들의 사랑은 무엇보다 큰 벽을 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관계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랑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볼 작은 공간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섹스 없는 부부생활의 시작과 남편의 동성 애인에 대한 질투와 시기, 남성에게 느껴야 하는 질투와 시기는 무엇보다 그녀를 무너뜨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마저 인정해야 하는 쇼코의 아픔이 무엇보다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이고, 그곳에서 남편에 대한 애증이 에쿠니 가오리의 청량한 문체와 더불어 농도 깊게 배어 나온다.

 

지리멸렬할 수도 있고, 현실성 없는 사랑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겐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현실성 있게 다가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현실에서 벗어난 듯 한 사랑의 방식은 사랑에 대한 정의를 찾기를 오히려 거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츠키가 곤씨랑 헤어지면, 그러면 나도 무츠키와 헤어질 거에요 ’라는 한줄의 대화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다.

 

에쿠니 가오리는 이 작품을 기본에 가장 충실한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그들의 사랑은 평범하고 기본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가 기본이라 칭하는 것들이 오히려 그들의 사랑의 방식을 부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동전의 앞뒤를 바꾸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그들의 사랑이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원칙에 충실한 것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청량한 문체가 어두울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산뜻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탈바꿈 시킨다.

코앞으로 다가온 차디찬 겨울을 맞이하며 함께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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