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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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4월 19일 오후 2시 30분

부천시민이 보는 가운데 아기공룡 [둘리]에게 부천시 명예시민증 전달식 및 명예시민증이 전달됐다. 830422-1185600 이라는 주민번호가 부여된 것은 그 뒤의 일인가 보다.

영원한 만화 주인공으로서가 아닌 의인화된 둘리는 순간 83년생이라는 청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는 청년 둘리로 불려야 할지 모른다. 나이 들지 않을 것 같던 천진난만했던 둘리도 20대 중반을 넘겨버린 청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뒤..

실력있는 신인들을 '인디존'이라는 코너를 통해 발굴하던 주간 만화잡지 [영점프]의 2003년 5월 1일자 단편만화에서 '둘리'는 전혀 다른 모습의 둘리로 그려졌다. 이름부터 앞의 [아기]는 빠져버린 공료 둘리로 말이다.

한창 주민등록증 발급이니, ‘둘리의 거리 제정’ 이니 호들갑을 떨 때 난데없이 한 켠에서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둘리의 아버지인 만화가 김수정씨는[공룡 둘리]를 본 후 “아니, 둘리, 둘리가...누가 이렇게 만들어 놨어?” 만화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혀 현기증이 났단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인 작가에게 그려진 공룡 둘리는 이미 그의 둘리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었으니까. 어쩌면 주민등록번호를 받았으니 당연할 법도 하다. 둘리도 나이는 먹을테니. 

 

김수정씨는 그에게 둘리 그리는 것을 순수히 허락한다.

이제 막 만화를 시작하는 최규석(저자)의 상상력과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다음에 또 누가 둘리를 그겠다고 하면 단호히 거절한단 말과 함께. 최규석의 [공룡둘리]는 그 단 한번의 예외다

   

주민등록 번호가 주어진 뒤 아기라는 이름을 잃고 얼마나 많은 고생과 시련을 겪은 것일까?

웃음으로 대표되는 둘리의 얼굴은 소주병을 들고 구부정한 허리로 세상을 원망하는 듯 쳐다보는 둘리의 모습으로 변해있다. '호이 호잇~'하며 천방지축 뒤흔들며 우리의 영원한 히어로 아기공룡 둘리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상태로 변해 있었다.

 


 

동네 싸움꾼 양아치가 되버린 희동이, 사고를 친 희동이 때문에 도우너를 외계인 연구소에 팔아버리는 철수, 동물원 타조우리에 갇혀서 몸을 파는 또치, 뽀글뽀글한 머리 까만 얼굴 그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어버린 밤무대 가수 마이콜. 늙은 타임코스머스를 팔아버리고, 고길동에게 사기를 친 도우너, 그리고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탓인지 할 일을 찾지 못해서 인지 일용직 노동자 된 둘리.

  


 


 


산업재해로 ‘호이 호잇~’을 외치던 손가락을 잃어 둘리의 트레이드마크인 요술이 온나 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둘리는 또치를 찾아가지만 또치에게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대답만을 듣게 된다. 무슨 일이든 함께 하던 그들의 우정과 모험은 아주 머나먼 깐따삐야 별에 두고 온 옛 이야기가 되버린지 오래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때 둘리와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을 만큼 처절함이 가득하다.

그렇다. 이젠 둘리와 소주를 한잔이 가능할 나이들이 되어 버렸다. 작가는 국가 대표급 명랑만화의 캐릭들을 처절하고 남루한 현실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만들어지는 극한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와 동심으로의 회유를 느끼게 해준다. 그들에게 또다른 옷을 입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여실히 드러나는 수작이다.

 








 

 

이 밖에도...

사회적 약자 위에서 군림하는 강자들을 꼬집는 단편 [콜라맨],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그려낸[리바이어던], 선택을 통한 삶의 재발견 [선택]등. 사회적 모순에 대한 실랄한 비판한 놀랄만한 그의 현실적 접근이 돋보이는 단편들이 둘리와 함께 자리잡고 있다. 깔끔한 그림과 사고의 전환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게 한다.

 


 


 


 

둘리의 나이들어감을 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지금의 내 모습을 부정하는 꼴이 될지도 모르지만, 영원한 기억의 저편속에 아이처럼 남아있던 둘리를 저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 작가가 밉다.

하지만 그를 통해 만난 둘리는 비록 손가락이 없어 예전처럼 요술을 부리던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의 손에 의해 더욱 현실감 있는 친구의 모습으로 그려져 간만의 친구를 만난 호사를 누린 기분을 충분히 만들어줬다.

 

나 또한 그만큼 변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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