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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 한 명품 중독자의 브랜드 결별기
닐 부어맨 지음, 최기철.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연말에 어머니께서 구두 한켤레를 선물해주셨다.
전에 신었던 구두와 같은 로고의 이번구두는 정말이지 다른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만큼 눈부셨다. 매일매일 정성스레 딱고 광내고 단 한번도 신은적은 없었으나 매일 숨겨둔 애인마냥 보고 또 보고 흐뭇해 했드랬다.
대망의 크리스마스.
귀국한 여자친구와의 데이트에 첫선을 보이기 위해 그놈은 또 목욕을 했다. 얼굴이 비칠만큼의 멋진광. 이놈만이 가진 최고의 디자인. 안창에 적혀있는 화려한 로고. 튼튼한 소가죽 밑창과 얄쌍하게 빠진 콧날. 역시 이놈은 최고다. 한달치 월급에 가까운 급액의 이놈을 본 그녀는 우리집의 재력과 능력 나의 뛰어난 안목과 스타일리쉬한 내모습에 또 한번 흠취하리라. 선물을 사서 무엇하겠는가. 이렇게 갖추어진 내가 선물이지. 살바토레 페라가모와 함께...
하지만, 데이트 하는동안 내모습에 반한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신발이란 자고로 이동간 발을 편하게 하고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의류품목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가치도 없는것이다. 여자친구는 신발에서 그 이상의 가치를 느끼지 못했고, 그놈을 통해 나의 가치를 판단해주길 바랬던 내 허망했던 꿈은 무관심 속에 이렇다할 빛도 못본채 사라져 버렸다. 몇번 더 선보였으나 그것은 내 모습에 어떠한 플러스 요인도 제공치 못했다. 왜 몰라주지...이거 비싼건데. 이런 바보같은.
"고급스러움이란 빈곤함의 반대말이 아니라 천박함의 반대말이다. - 가브리엘 샤넬-"
과연 그럴까?
고급스러움과 천박함이란 말을 고작 옷이나 만드는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릴까? 자기가 만든 물건을 어떻게든 많이 팔고 그로인한 수익이 자신의 생계인 사람의 입에서 천박함과 같은 말로 사람의 가치를 운운하는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온듯 싶다. 옷과 브랜드의 가치를 통해 사람을 판단하고 그와의 관계 유지에 그것들이 관여했던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절친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한껏 멋을 부리고 간 나와 달리 수수한게 차려입은 친구의 모습을 보고...
"뭐야~갈수록 촌스러워 지냐. 요즘 바빠?" 라는 첫마디의 인삿말을 입에 담았던 나다.
단지 만남의 상황만을 따지고 보더라도 친구와의 만남에 힘주고 간 내가 바보같은 놈이었다는건 까맣게 잊어 버린 채 옷차림만으로 판단을 마다하지 않았던게 나였다. 혹자는 스타일이란 자신감, 또는 경제력과 센스를 함축한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라 말하곤 한다. 모든것을 부정하진 못하겠다. 옷잘입는 사람, 깔끔한 사람은 멋지게 보이는게 사실이잖은가. 이곳에선 그것으로의 논쟁은 피한다. 브랜드와 스타일과의 모호한 관계는 접어두고 브랜드로의 무비판적인 인지와 잘못된 선입견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나 역시 과도한 브랜드 집착증을 보이곤 한다.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도 줄이 세줄있느냐 두줄 있느냐의 유무에 따라 결정한다. 그것은 브랜드와 모조품이 경계인것이다. 같은 모양에서 단 한줄의 줄이 빠지고, 가슴의 로고가 빠지고 나면 가격은 10분의 1로 책정된다. 하지만 싼 가격임에도 구입하지는 않는다. 모조품을 입고 있으면 내가 초라해 질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먼곳에서 보면 그게 한줄인지 세줄인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아무도 내가 입은 옷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채 마냥 흡족해 한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스레 받아들인다. 무피반적인 광고매체의 습득은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경제적 행위에도 무감각해지는 모양이다. 광고주들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다. 감성을 건드려 지출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이 광고주들이 그곳에 열을 올리는 이유니까.
저자는 화형식이라는 극단적인 성향의 포퍼먼스를 계획한다. 명품중독이라고 하는데 도가 지나친 모습이긴 하다.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상실감, 존개감의 결여를 명품에서 찾고자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린시절부터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데 브랜드의 힘을 이용해 왔던 저자는 어느순간 트라우마에 빠진다. "과연 이 명품이 나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작은문제와 대면하면서 자신의 명품중독증에서 탈피하고자 화형식을 거행하게 된다.
배블런 효과, 매스티지신드롬이란 거창한 단어로 포장된 병적인 명품대중화 현상에 병들어 있는 국내에서 누군가 브랜드 화형식을 가진다면 어떤 여파로 다가올까? 내심 궁금하면서도 나에게 묻고 싶기도 하다. 얼마전 받은 구두 불태워 버릴수 있냐고 말이다.
내 대답은 단연코 "NO!" 다. 어머니께서 죽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