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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평점 :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유려한 그림체,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그 둘의 우열을 가릴 필요도 없이 봉봉 작가는 <웰다잉 프로젝트>에서 예리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수단 그 이상의 구성과 연출을 보여준다.
학부 시절, 시험기간이 끝난 도서관 열람실에서 그래픽 노블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읽던 것이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이었던 내게는 이 책이 졸업 후 오랜만에 받은 선물과도 같았다.
그래픽 노블의 특성상 텍스트는 대사에 한정되어있고, 그보다 더 많은 맥락과 연출은 정교하게 설계된 컷으로 전달된다. 그렇게 작가가 치밀하게 설계한 매 컷을 눈으로 바쁘게 따라가는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사람을 닮은 AI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라는 질문을 촉발하는 것처럼,
한 가지 질문에 대답 대신 더 많은 꼬리 질문들이 따라 붙었다.
그렇게 봉봉 작가는 아름다운 그림체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질문들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나를 오래도록 머무르게 했다.
이 칸 하나의 그림을 위해서 뭘 삭제했을까 어떤 것을 덜어냈을까?
덜어낸 부분엔 또 어떤 질문이 있었을까?와 같은 구성/연출 차원의 질문에서부터,
표제작의 <웰다잉 프로젝트>가 던지는 어떻게 ‘잘’ 죽을까?라는 질문,
모두가 ‘표준외모’를 갖고 태어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모 소수자’라고 불리우는 사회의 <붉은 여왕>에서 아름다움의 기준이란 무엇인가?라는 까지.
이때 어떻게 ‘잘’ 죽을까?라는 질문은 또다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고,
미를 좇는 그 부질없고 끝 없는 레이스는 결국 인간의 욕망에 빨대를 꽂은 상업화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맺는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매우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은 가벼울 지언정 쉼없이 질문을 만들어내는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 없기 때문에.
한 가지 작품을 보아도 모두 다른 생각과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 같아 책장을 덮는 동시에 책모임 친구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졌다.
여기, 그래픽 노블로 읽는 ‘블랙미러’가 있다고. 이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