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에서 재현 되는 PD의 모습 말고, PD가 직접 얘기하는 PD의 일은 어떨까? 직면하는 마음은? 그건 또 어떤 마음일까?
권성민 PD는 내가 표지를 보고 대번에 품은 질문에 천천히, 그러나 매우 흥미롭게 답변을 풀어간다.
작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독서를 통해 느끼는 재미는 ‘수많은 문장들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책은 많은 문장을 따라가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흥미로웠다. 이런 책을 만나서 술술 읽히는 경험을 할 때마다 이거지, 하고 쾌재를 부른다.
책 소개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콘텐츠 제작자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가이드'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어떤 걸 얻어갈 수 있을지 기대보다 의심이 더 컸다. 대단한 상상력과 영감이 필요하지 않는 내 업무와는 달리 PD라는 직업은 끝없이 창의력을 요구하고, 또 누구보다 소모적/에너지나, 아이디어, 시간 등 그들이 끝없이 소진해야만 하는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을 수록 나와 굉장히 비슷한 마음과 생각의 결을 갖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권성민 PD가 말하는 '직면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나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 매일 내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하되 인정에 그치지 않고 그걸 뛰어넘기 위해 작은 것이라도 노력하는 삶의 태도인 것 같다.
그 한계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언제까지고 튼튼할 줄 알고 혹사했던 내 몸, 건강일 수도 있는 거고, 업무에서 내 약점을 /분하고 창피하더라도 인정한 뒤 안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모든 방면에 있어서 더 나아진다는 것은 지금 여기 나의 한계와 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니까.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감을 꼭 쥐어잡기 위해서 평소에 꾸준히 건강과 지식을 다져놓는다는 작가의 말에서 '영감'은 내 루틴과 생활 패턴에는 곧 '기회'라는 단어로 치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 삶, 내 일상, 그리고 내 태도에 호환가능한 부분이 꽤나 많았다.
작가가, 또 내가 업무의 특성을 떠나 일상을 성실하고 루틴하게 가꾸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처럼, 내 삶에 충실하고 싶은 모두는 어느 정도 다 똑같은 결을 갖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나 다른 우리인데도 다들 ‘사람 사는 거 똑같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은 부분에 공감하며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였고, 그렇게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지금까지 없었던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업무, ‘직면하는 마음’이라는 삶의 태도, 꾸준히 쌓고 있었던 독서량에 ‘수의근’이라는 멋진 비유와 같은.
어떤 표현은 작명에만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 어른이 되는 것은 타협과 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약간은 비관적이고 또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내게 저자는 ‘타협하며 전진하는 태도를 연습’한다는 말로 각도를 약간 틀어 햇빛이 비추고 온기를 더한다.
그렇게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내 일, 내 일상생활, 그리고 나아가 내 삶을 비추고 있는 내 생각과 마음에 ‘직면하는 마음’이라는 꽤 있어 보이고 또 따뜻한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