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평점 :
K-하트부터 시작해서 K로 시작하는 온갖 명명법이 징그럽도록 싫어진 건 'MZ세대'라는 단어처럼 알파벳에 문화현상을 구겨넣어 얄팍하고 납작하게 만드려는 시도가 지겨워졌을 때부터였다.
현 세대에 대한 진단이랍시고 쏟아진 각종 ‘분석’은 알러지 반응처럼 으레 ‘뭐돼?’라는 반응을 불러오기 일수였지만 이 책은 달랐다.
밈에 잔뜩 절여진 이 책은 순간순간 그저 트위터 밈을 문헌으로 옮겨온, 밈 장아찌를 담근 장독대 같기도 하지만,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들을 박제한 목격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충실한 목격자와 기록자가 아니라, 끊임 없이 재생산하고 정신 없이 향유하는 당사자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진단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히 실향민 신세다. 종교, 국가, 지역, 가족 내 역할, 섹슈얼리티, 평생 직장처럼 인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자유라기보다 의미의 상실이라는 고통을 주는 쪽에 가깝다고들 말한다. 이런 정체성을 개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이 문제를 대부분 소비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 스마트하고 힙한 일잘러 정체성을 갖고 싶다면 맥북을, 보다 힙해지고 싶다면 그 본체에 스투시나 슈프림 브랜드 로고 스티커를, 친환경주의자 정체성을 달고 싶다면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는 북극곰 캐릭터 키링을 달아주는 식으로 말이다.
… 그리고 이 정체성 소비의 핵심은 ‘이미지’다. 인스타그래머블 이미지는 단지 세련되고 특이한 비주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규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 그러다 보니 패스트패션처럼 정체성도 패스트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좋아요>, p.205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현상을 동시에 향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모든 내용에서 ‘나’를 찾을 순 없지만 공감할 수 있고, 이 책에 나열된 모든 것을 내가 하고 있진 않지만 이해는 간다. 오히려 온통 내가 아니라, 나의 일부가 여기 있기에 더 마음이 갔다. 아는 맛 사이의 모르는 맛이 더 흥미로운 것처럼.
그래서 MZ세대라는 명명법에 갇혀서 이렇게나 다른 사람들을/우리를 설명하려는 헛된 시도보다는, 장르는 다르지만 중독을 사랑하는 세대로 호명하는 것이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떤 교집합에서는 필연적으로 외집단일 수 밖에 없는, 늘 내가 어느 만치 비주류라고 느끼는, 단어 하나로는 절대 묶을 수도 담아낼 수도 없는 지금 여기 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도 중독을 사랑한다.
그게 MZ세대라는 좁고 갑갑한 명명법에서 놓친, 지금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의 느슨하지만 가장 강력한 공통점일 것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우리는중독을사랑해, #도우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
우리는 영원히 실향민 신세다. 종교, 국가, 지역, 가족 내 역할, 섹슈얼리티, 평생 직장처럼 인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정체성의 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건 자유라기보다 의미의 상실이라는 고통을 주는 쪽에 가깝다고들 말한다. 이런 정체성을 개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이 문제를 대부분 소비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 스마트하고 힙한 일잘러 정체성을 갖고 싶다면 맥북을, 보다 힙해지고 싶다면 그 본체에 스투시나 슈프림 브랜드 로고 스티커를, 친환경주의자 정체성을 달고 싶다면 ‘선한 영향력’을 내세우는 북극곰 캐릭터 키링을 달아주는 식으로 말이다.
… 그리고 이 정체성 소비의 핵심은 ‘이미지’다. 인스타그래머블 이미지는 단지 세련되고 특이한 비주얼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규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 그러다 보니 패스트패션처럼 정체성도 패스트 정체성이 되어버렸다. - P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