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각본
셀린 송 지음, 황석희.조은정.임지윤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열두 살 때 세상에 둘도 없는 단짝친구로 지내던 나영과 해성이 스물네 살 그리고 서른 여섯 살에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나영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끊긴 연락이 12년 후 서로에 대한 궁금증으로 다시 시작된다. 풋풋한 기억으로 재회한 둘은 다른 삶을 보내고 있다. ‘노라’라는 이름으로 극작을 공부하는 나영과 공학을 공부하는 해성, 둘은 한동안 매일 스카이프로 서로의 생활을 공유한다. 그러다 노라는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해성에게 잠시 멀어지자고 말한다. 그렇게 둘은 사랑 아닌 사랑을 했다가, 이별 아닌 이별을 맞는다. 12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터전을 잡은 둘은 뉴욕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의 관계가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된 걸까.’ 영화를 볼 때 떠올린 생각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러면 나를 스친 이들도 전부 지난 생에서 만난 사람들일까? 내 가족, 내 친구와는 얼마나 두터운 겹을 쌓았을까? 사랑, 관계, 정(情)에 물음표를 던지게 한다. 어쩌면 관계에 대한 미련을 떨쳐 내게 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틀어진 연에 아파하기보다 전생에 엮이지 않은 실이라고 생각하며, 무겁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단단함을 배울 수 있다. 또, 굳건한 자아를 끊임없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노라를 보면, 지나간 사람에 연연하기보다 ‘나’라는 사람을 가꾸어 나가자고 다짐하게 된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다음 날 각본집을 읽었는데,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서 영화 속 장면들이 자동 재생되었다. 배우들의 눈빛, 몸짓, 표정이 생각나 입꼬리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며 읽어 내려갔다. 각본집에는 영화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스크린을 따라가기에 바빠서 놓친 인물들의 내면, 감정, 시선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 엑스트라들의 시선과 기분까지 쓰여 있어 노라와 해성, 아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감상한 후, 각본집으로 감성을 흡수하기를 추천한다. 인물들의 눈길과 묘한 흐름, 분위기를 흡수하게 하는 연출이 영화로 와닿기 때문이다. 막이 내리고도 멈추지 않는 눈물과 먹먹함이 활자로 다시 한번 마음속에 스며든다. 동적인 장면에서 정적인 글로, 가시지 않는 여운을 이어가 보면 어떨까.

너가 기억하는 나영이는 여기 존재하지 않아. 근데 그 어린이는 존재했어. 너의 앞에 앉아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냐. - P131

이것도 전생이라면, 우리의 다음 생에선 벌써 서로에게 다른 인연인 게 아닐까? - P1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