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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ㅣ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평점 :
꼬꼬무의 모든 에피소드가 재밌었지만, 특히 첫 번째 이야기(카사노바 박인수 사건)가 제일 흥미로웠다.
1955년 봄, 박인수라는 남자가 70명의 여자를 만났다는 혐의로 구속된다. 이에 박인수는 해당 여성들과 잠자리를 가지려고 만난 것이지 결혼하려고 만난 것이 아니라며 혐의를 부인한다. 또한, 그는 '내가 만난 여성 중 처녀는 미용사 한 명뿐이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발언은 사회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혼인빙자간음이란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간음하는 것인데, 여기서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 = 음란하지 않은 여자'를 의미한다... 즉 박인수는 그 한 명의 여자를 제외하고 모두 문란했으므로 혼인빙자간음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이후 피의자인 박인수가 아니라 피해 여성들에게 질타의 시선이 쏟아졌다. 여성들에게 각성, 자성을 요구하고 피해 학생들을 학교에서 퇴학시키고... 심지어 법원에서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고 판결한다...
여자의 정조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박인수 사건이 터졌을 때만해도 잘못된 유교 사상이 사회 전체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피해 여성들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한국 근대 문학 작품, 이러한 사건들, 판결을 보면 항상 의문이 든다. 왜 여자는 순결해야 하고 정조를 지켜야 할까? 문란하다는 기준은 누가 세운 것일까? 이 이야기를 읽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정조가 뭐길래 피해 여성들이 위축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성폭행 피해 여성이 왜 가해자와 결혼해야 하는지(박인수 사건 뒤에 추가되는 에피소드) 정말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때보단 성차별적인 분위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평등한 사회, 평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완전히 모두가 평화롭고 평등한 대우를 받진 않는다. 사회에서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가부장제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성차별뿐만 아니라 장애인 차별, 노인 차별, 아동 차별 등 우리는 수많은 차별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늘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한 우물 안에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행을 늘 경계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여전히 차별적인 단어를 인지하지 못한 채 내뱉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실천하면 된다. 이제 나는 '남성적', '여성적', '결정장애 혹은 선택장애', '맘충', '노키즈'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특히 뭐 하나를 잘 고르지 못하는 성격 탓에 '결정장애' ,'선택장애'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 단어들은 모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었고 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좀 선택을 잘 못해서~~' 내지는 '원래 내가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라는 말로 대신한다. 그리고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으려 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었는데, 어느 순간 남성적, 여성적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게 됐다. 도대체 남성적이라는 건 뭘까? 세고 강인하고 그런 이미지인건가? 여성적 이미지는? 여리여리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그런 이미지? 형용사, 부사는 우리를 꾸며주는 수식어가 되어야 하는데, 언젠가부터 우리를 한정짓는 제한어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규정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