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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 12년차 집시 세라의 인생사용법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여행을 자주 떠나 보지 않은 사람에게 12년차 세라가 전하는 이야기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 같다. 그녀는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놓았고, 그녀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의 트렁크 만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을 통해서 인생의 참 의미가 ‘놀다 가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전혀 심각한 것이 없는 삶을 배우게 된다.
또한 그녀는 웃음의 축복을 받게 되고 웃음사두가 되었다. 그녀의 웃음은 평생을 따라 다닐 것이다. 평생을 웃고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즐거운 삶이다. 여행속에서 그녀가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삶의 깊이가 있다. 그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녀에게 행복이며, 기쁨이다.
그녀는 아름다움을 즐기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그녀처럼 받았던 고마움을 다시 나누어 주는 것. 그래서 모두가 행복해 지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좀처럼 살던 곳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젊었을 때는 돈 때문에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대로 자신이 사는 삶에 안주하게 된다. 12년차 집시인 저자는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2년 전, 처음 인도로 떠날 무렵 저는 지치고 외로웠습니다. ...(중략) 하루 하루는 끔찍이도 효율적으로 흘러갔지만 저는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것이 가슴이 뻐근하도록 두려웠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점점 지쳐가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게 된 저자의 생애 최초 여행지는 인도 캘커다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가게 된 인도에서 마더테레사의 집으로(봉사를 하겠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팔이 없는 슈와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다 주었지만 반나절만에 결국 자신은 그 아이에게 값싼 동정만을 베풀엇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울면서 그곳을 떠나오게 된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되었던 인도는 ‘노 프라블럼’ 이었다. 그 곳에서는 급할 것도 없고 문제될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10년뒤 인도는 차츰 문명화로 ‘프라블럼’ 으로 바뀌게 된다. 어느날 저자는 기다란 실크천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전문적인 화가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남들이 그리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도를 안아주려는 마음이었다. 바라나시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준 작품은 커다란 손이었는데 그것은 슬픔을 가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손이었다. 그가 인도에서 처음 받았던 치유의 느낌을 지금 병들어 있는 인도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의 작품에 많은 감동을 받았고, 그 뒤로 저자는 100일간의 일곱 개 도시와 시골을 다니며 전시회 <아트 투 하트>를 하게 된다.
일본의 나가노 현에서의 이야기는 삶의 무게의 이야기를 말해준다. 깊은 산골마을 쿠로히메의 동화의 숲에서 만난 할머니는 작고 통통한 몸인데도 동화이야기를 하면서 무대를 이리저리 뛰어 다녔는데, 어쩜 그렇게 가벼울 수 있는지 물었더니 “보따리가 가벼우니까. 나이가 드니까 등에 멘 보따리에서 하나둘씩 뭔가가 빠져나가요. 남들은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아쉬워들 하지만 나는 그게 그렇게 가뿐하니 좋을 수가 없네.”라고 말을 한다. 마음의 가벼움 기쁨은 지금의 짐들을 내려놓음으로 가능해 지는 것이다.
항상 효율적인 것을 찾는 우리에게는 낭비 한다는 것에 대한 어떤 고정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는 낭비의 가치에 대해 “결국 아름답고 멋있게 시간과 돈을 낭비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언가를 한다. 돌이켜 보면 행복한 기억이란 거의 모두 근사하게 낭비했던 기억들이다.” 라고 말하며 “신은 우리가 부디 낭비하길 바란다. 그리고 부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다. 그것이 신의 창조목적이었으므로.” 라 말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서 반드시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의 관점으로 본다면 결국 낭비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들을 얼마나 아름답게 낭비하는가? 그것이 삶의 목적은 아닐까?
내가 느꼈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저자가 대장정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바라나시에 힌두대학에서 전시를 할 때 한쪽 팔이 없는 남편과 쓸고 무릎아래가 없는 아내가 바닥을 닦게 되었는데, 그들이 청소를 잘 못하자 쑤니아저씨(대장정을 함께한 분)가 부부에게 그만 두라고 말하였고, 부부는 “청소를 하지 않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 수위가 대학 건물에 들여 보내주지도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지난 이틀 동안 바닥을 청소하면서 그림을 보았는데 아내도 나도 너무 좋았어요. 청소하면서 아내가 웃는 건 처음 봤어요. ...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어릴때 죽은 엄마를 만나고 온 것 같다며 밤새 울었어요....” 라고 했다.
저자는 아내에게 ‘사실은 ... 처음부터 당신 주려고 그린 거예요.“라며 그림을 주었고, 그림을 받은 아내는 울고 있었다. 또한 그의 남편은 그저 한동안 울며 저자와 같이 서 있었다.
저자의 전시회에서 팔린 그림은 오직 이 한 점 뿐이었지만 진정한 장정의 의미를 되새겨 주었다.
저자는 죽은 뒤에 신이 “잘 놀다왔니?” 라고 묻는 다면 “잘 놀다 왔어요!‘라고 대답 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죽은 뒤 신이 ”잘 놀다왔니?“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
“네! .” 아니면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