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이 책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지나친 신뢰감’ 때문이였다. 중학교 시절, 친구와 같이 집에 가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갔다. 그날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하게 되었다. 친구는 자신이 그동안 읽었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노인과 바다>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 소설은 그냥 단순해. 노인이 어느 날 커다란 참치는 잡았는데, 그 참치를 배에 실고 오는 도중에 상어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돼. 결국 도착할 때에, 참치의 머리와 뼈만 남았다. 라는 이야기야.” 라고 아주 간단하면서, 무미건조하게 나한테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당시에 친구의 말을 들은 다음, 나는 ‘<노인과 바다>라는 책 완전 재미없구나, 읽어보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다.
과거의 이런 내가 갑자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올해 말에 실시하는 ‘문학동네 서평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분량이 짧은 <노인과 바다>를 선택한 것뿐이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그 친구가 했던 말은 책의 내용을 완전 삭막하게 전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친구는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이번에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노인의 모습에 대해서 자주 감탄을 했다.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산티아노 할아버지라는 노인은 지난 84일 동안 물고기를 잡지 못했었다.
p33 나는 줄을 정확하게 드리우지, 노인은 생각했다. 다만 더이상 운이 없을 뿐이야. 하지만 누가 알아? 오늘이라고 운이 트일지?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하지만 난 우선 정확하게 하겠어. 그래야 운이 찾아 왔을 때 그걸 놓치지 않으니까.
그 다음날인 85일째에, 기존보다 먼 바다로 나가서 낚시를 했다. 드디어 낚싯줄에 물고기가 걸린 것이다. 길이 5.5미터, 무게 700kg이 나가는 대형 참새치. 노인은 이틀간 밤낮으로 낚싯줄에 걸린 대형 참새치와 사투를 벌인다. 참새치는 낚싯줄을 끊으려고 바다 속 깊이 들어가려고 하고 아니면 힘으로써 줄을 끊게 하려고 한다. 동시에 노인은 이런 참새치의 행동에 대처를 한다. 낚싯줄을 더 늘리게 하면서 기운을 빠지게 한다든지, 아니면 배의 저항력을 높이려고 노를 수직으로 걸쳐둔다.
p49 이럴 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질 텐데. 그러다가 그는 생각했다. 한순간도 물고기를 잊어서는 안 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해야 돼.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절대 안 돼.
이렇게 2일 동안 참새치와 싸우면서 할아버지는 참치를 정복대상이 아닌 하나의 친구로 여긴다. 힘에 부친 상황에서 노인은 옛날의 장사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노인과 참새치의 사투 과정 속에서 노인은 참새치를 하나의 과시욕이 아닌 친구로 여긴다. 나중에 노인은 참새치에게 너를 일부러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어부)을 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을 전한다. 이렇게 해서 잡은 참치를 보트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는 도중에 상어떼에게 습격을 받는다.
p107 하지만 나는 내 물고기를 물어뜯은 상어 놈을 죽였어, 노인은 생각했다. 게다가 놈은 내가 여태껏 본 덴투소 중에서 제일 큰 놈이었어. 하느님도 아시겠지만 난 큰 놈들을 많이 왔어.
오래가기에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차라리 모든데 다 꿈이라면, 내가 저 물고기를 낚은 일이 전혀 없던 일이고 그저 혼자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있는 거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언정 패배하지 않아.” 그래도 이렇게 되고 보니 저 물고기를 죽인 게 후회스럽군, 노인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꼬리, 그 다음에는 대뱃살, 그 다음에는 아가미등을 뜯어 먹는다. 그렇게 상어떼 에게 당해고 나서 보트는 해안가에 도착을 했다. 그때, 보트에 실린 것은 참치의 대가리와 앙상한 뼈만 있었다.
p126 물에 반사된 가로등 빛을 통해 물고기의 커다란 꼬리가 배의 고물 뒤로 높이 솟아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허옇게 드러난 기다란 등뼈와 주둥이가 뾰족 튀어나은 시커멓고 커다란 머리가 보였고, 그 사이로 뼈만 남은 텅 빈 잔해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나에게 소설 속 노인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에 남는다. 물고기를 잡지 못한 84일 동안 어부로써의 자존심이 구겨졌을 텐데도, 자신에게 분명 ‘운’이 찾아온다 라고 믿으면서, 그 날을 위해서 준비하는 노인의 모습. 마침 그 기회가 왔을 때, 힘든 순간이 와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잡으려는 노력과 결국 참새치를 싣고 돌아오는 모습. 상어떼 에게 참새치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격렬히 저항하는 노인의 강인한 모습.
이러한 노인이 겪은 상황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어느 누구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이 순간을 즐기면서 보낸다. 이 순간을 얻기 위해서, 분명 힘든 고생을 했을 것이고, 심지어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었을 때, 만족감 및 행복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속으로 ‘이렇게 열심히 살고, 노력한 나를 하늘이 외면하지 않고, 도와 준 거야.’ 라고 읊을 것이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에 반드시 시련이 점점 다가온다. 그 시련이 소설 속 노인처럼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한 순간에 빼앗겨 버려진데도,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 나에게 전해준 첫 번째 메시지이다.
소설 속 마지막 부분에서 노인은 자신의 방에 와서, 깊은 잠을 청했다. 만일 노인이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상어에게 뜯겨지기 전의 청새치를 계속해서 생각했다면, 집에 가서 잠이 올까? 내가 노인의 입장이라면 오히려 아쉬워서 잠을 안 잘 것이다. 아니 못 잤을 것이다. 자신의 노력을 해서 얻은 최상의 청새치를 어느 누구(상어)가 빼앗아 가고, 쓸모 없는(뼈와 대가리) 것만 남겨서 억울한데, 잠이 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노인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은 최선을 다 해서 일 것이다. 즉 자신의 능력범위인 극한 상태까지(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가서 최고의 상대(청새치)와 만나서, 그와의 대결에서 이겼다. 그것(청새치)을 외부에 있는 것들(상어떼)로부터 지키려고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노인은 침대에 눕자마자 깊게 잠에 빠져든 것이다. 이러한 노인의 자세는 ‘청년’의 모습과 유사하다. (제가 말하는 ‘청년’의 의미는 단순히 20대인 남자,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청년은 자신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을 지칭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조정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자기가 노력을 한 게 자기 스스로를 감동하게 할 정도가 되어야 그게 정말로 노력하는 것". 이 말씀처럼 자기가 한 노력에 스스로가 감동을 받을 만큼 목표 및 목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본 자를 청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전해준 두 번째 메시지이다. 노인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겉만 늙은 청년’이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몸은 청년인데, 마음도 청년인지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