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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세상에 예쁜 것은 그 사람입니다.>
이번 책은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이다. 처음으로 박완서 작가를 알았던 것이 ‘나목’이라는 책으로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 좋은 인연으로 맺어서인지, 다른 작품들을 읽으면서 작가의 모습을 상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의 책 <세상에 예쁜 것>을 읽을 때, 나는 어린 시절 핫도그를 먹듯이 읽었다.
꼬마였던 시절, 어머니와 같이 동네 시장에 가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꼭 ‘핫도그’를 사주셨다. 이 ‘핫도그’는 다음에 시장으로 데리러 나오기 위한 ‘어머니만의 유인책’이 였을 것 이다. 핫도그 가게 앞에서 잠시 동안 있은 뒤에, 가게 아저씨가 나에게 핫도그를 건네 주었다. 갓 튀겨진 핫도그위에 다양한 소스를 뿌려진 핫도그. 어린 마음에 그 핫도그를 오랫동안 맛보기 위해서, 핫도그의 빵 옷만을 우선 야금야금 먹었다. 결국 빵 옷을 벗긴 핫도그를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고 나면, 누가 그 소세지를 ‘홀라당’ 빼앗아 먹을 것 인거 마냥, 주위를 살피면서 먹은 기억이 있다. 이번 책이 ‘선생님과의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그 시절 꼬마처럼 조금씩 읽어 나갔다.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구절이 나오며, 다른 노트에 옮겨서 적었다. 아니면 눈으로 그 글귀들을 뚫어져라 바라면서 마음과 머릿속에 새기어 넣으려는 자세로 반복해서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세상에 예쁜 것>이다. 특히 삶과 죽음을 바라본 선생님의 시각이다. 그 장면은 다음과 같다. 박완서 선생님의 친구 한 분이 마지막 자신의 생명 불씨가 점점 작아지고 있으면서 병원 침대위에 누워 있었다. 그 환자는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순간에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손자의 발바닥이다.
p83 그러나 그런 생각이 옳지 않다는 걸 곧 깨달았다. 고통스럽던 병자의 얼굴에 잠시 은은한 미소가 떠오르면서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을 보니 잠든 아기의 발바닥 이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탄성이 나올 만큼, 아니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수명을 다하고 쓰러지려는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병자도 지금 그런 위로를 받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죽음’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숙부님’이다. 지금 나는 20대로써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 앞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고 그 청사진을 실체화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죽음’ 이라는 단어보다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는 나. 분명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살고 있으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외면하고, 오히려 그 ‘죽음’은 쓸쓸하고, 외롭다 라는 감정을 내포한 단어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서 박완서 선생님은 죽음의 의미를 다시 봐주었다. 환자는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데, 그 상황 속에서 새 생명의 발가락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는 모습. 죽음은 단지 ‘외롭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라는 점을 알려 주셨다.
위 장면을 읽으면서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숙부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숙부님이 겪으신 상황은 책의 내용과는 반대이다. 숙부님의 경우, 자녀들이 어린 시절(4-6세)에 이혼을 했고, 그 이후 홀로 살아 오셨다. 숙부님이 숨을 거두기 직전 찾으신 분은 전 부인도 아니고, 나 도 아닌, 그분의 아들, 딸이였다. 서거하시기 며칠 전에 그 애들한테 연락이 닿아서, “한번 병원으로 와서 너희 아버지를 한번 뵈었으면 좋겠다.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을 보고 싶어 하신다.”라는 말을 전했다. 그렇지만 그 애들이 지난날 이혼의 상처 때문인지 병실로 오지도 않고 마지막 가는 길에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숙부님은 마지막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순간에도 얼마나 얼굴을 보고 싶어 하셨을까?, 그 애들의 목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어 하셨을까?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만큼 약한 동물도 없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서로 모여서 살고, 서로에게 위로 및 행복함을 얻으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에 우리 자신도 다른 누구에게 위로 및 행복감을 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만일 그 순간이 오면, 후회 없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말이지 후회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