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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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강신주

 

나는 이 사회 세상을 보는 창문이 몇 개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창문(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고, 소통을 한다. 그리고 자기의 창문으로 보여진 세상을 제대로 봤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믿는다. 즉 “나는 세상을 제대로 봤고, 완벽히 봤어” 라고 말한다. 마치 여러 명의 장님들이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가면서 코끼리를 기둥 같고, 갈라진 땅과 같으며, 담장과도 같다 라고 말하듯이, 각자 자신의 창문으로 코끼리를 평가하고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긴다.

 

나도 장님들과 같지 않을까? 자기만의 창으로 세상을 보고, 나와는 다른 창으로 본 것을 거부하지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이다. 이런 나에게 이 책은 창문들을 여러 개 보여주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이 책의 저자는 21명의 철학자와 21명의 시인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이 세상(삶의 풍경)의 모습 및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들 중에는 익숙한 것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발견 창문(프레임)은 나와 너 우리 사회를 한번 살피게 되고,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책 내용 중 프레임(창문)을 몇가지 기술하겠다.

 

우리의 사회는 나한테 소비를 하라고 유혹하고 있다.

 

오징어-유하

 

눈앞의 저 빛

찬란한 저 빛

그러나

저건 죽음이다

의심하라

모오든 광명을

 

나는 tv를 통해서 오징어잡이 배를 본 적이 있다. 새벽에 나가서 오징어잡이 배는 한 밤중 바다 한가운데에서 밝은 등(집어등)을 킨다. 등을 키면 오징어들은 이 빛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 죽는 줄 알면서도 미끼를 덥석 문다. 우리한테 집어등은 백화점이 아닐까? 백화점은 화려한 불빛, 멋있는 옷, 가구, 음식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누구나 그 곳을 지나가면서 눈길이 간다. 이 모습을 보면, 원래부터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물질을 소유하는 것,소비를 통해서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여기서 철학자 벤아민는 이 자본주의적 욕망은 역사적인 구성의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벤아민은 초창기 백화점이 어떻게 발전하는 과정을 보면서, 소비의 욕망(물질추구)은 특정한 시대의 훈육의 결과이지 인간의 선천적 본성은 아니라고 말한다. 흔히들 쇼핑하다가 “지름신이 와서, 이 아기(상품, 핸드백)를 꼭 살 꺼야” 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본성이다(끊임없이 소비추구). 이 말은 인간은 물질적 욕망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가 있다 말이고, 정신적인 욕망 또한 추구 가능 할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사유를 해야 한다.

독일 나치의 정치범인 아이히만은 독일의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및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의 체포, 강제이주를 계획 ·지휘했다. 그는 유태인을 600 만명 정도 학살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을 냉혈 인간, 괴물 같은 마음과 정신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철학자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관찰한 결과, 아이히만은 괴물 악마가 아니라 이웃 아저씨처럼 너무나 평범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냥 자기한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일반 관료들이 자신이 맡은 일에서 최대 이익을 위해서, 사무실 비용이 어떻게 줄일까? 어떻게 운영해야 손실을 줄이지? 직원들을 자를까? 등 과 같은 생각을 한다,

 

아이히만은 또한 관료로써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유태인을 운반하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독가스 실을 운영 하는지를 고민을 했다고 한다. 아이히만과 일반 관료들은 자신한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으며, 실천으로 옮겼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이히만은 단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즉 유태인의 고통을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이와 같은 행동(타자를 사유하지 않는 행동, 아이히만의 행동)은 우리 사회에도 존재 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현대 사회는 분업과 전문화가 급속도록 진행되고 있다. 업무의 효율성 향상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구조는 점점 증가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현실은 다른 말로 하면 같은 조직에 속해 있어도 우리는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알기 힘든 경우가 비일비재한다. 즉 무슨 일들이 너무나 전문화되고 분업화되어 있어서 우리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인지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인지 거의 반성할 틈이 없다. 그저 내 앞에 놓여진 서류에 싸인하고 정리하고 성명하고 있다(무사유를 조장하는 사회).여기서 저자는 말한다. 아이히만처럼 단지 무사유로 써 열심히 일한 당신 또한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철학과 시는 인간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도구이다. 철학과 시는 익숙해지고 편안한 삶을 사고 있는 나에게 낯설기와 불편함을 줌으로써 우리가 살아온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주는 것을 말이다. 인간에게 타자와의 만남은 숙명이라고 말하는 들뢰즈의 말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타자들에 대해서 두려움과 반가움을 가지면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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