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이지 않은 세상에서 - 소설가를 꿈꾸는 어느 작가의 고백
강주원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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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있다. 경험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글을 쓰는 것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을 조금씩 이해해 나가는 시간임을 깨닫게 해준다.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작가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며 작가가 보고 느낀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읽기와 쓰기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타인의 글을 통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남들에게 들려주기 전,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저자에게는 글쓰기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초반에는 여러 공모전에서 낙방하기도 하고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기도 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고 책을 낸 지금과는 달리, 처음 글을 쓰던 시절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에 보이는 공모전에 무작정 응모하곤 했다. 그때 응모했던 글들을 돌아보면 형편없고 부족하게만 느껴지긴 해도, 지금의 글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발전이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글들이다. 나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저자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저자처럼 나만의 책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P. 96

글쓰기는 놀이가 아니며 반드시 즐거워야 하는 것도 아니다. 노트 위 몸부림은 당연하다. 쉽게 쓰인 듯한 일기에도 고심과 고침의 흔적이 숨어 있는 경우 흔하다. 달콤한 고백이건 꿈같은 회상이건 기본적으로 쓰기란 쓰디쓴 고통이다. 좋아 죽을 것 같은 기분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죽도록 고민해서 써야 하는 게 작가다.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헛됨을 온전히 이해하려거든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이 사랑의 원인과 결과는 글, 문학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형언하기 힘든 어떤 것'이며 '끔찍한 결과물'이다. 너무 사소해서 인지조차 되지 않는 그 형언하기 힘든 어떤 것이 세상을 흔든다.

헛된 인간이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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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좋아서 시작했지만 막상 쓰는 과정은 늘 고통이 따른다. 어떤 날은 한 문장을 붙들고 몇 시간을 씨름하다 결국 지워 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내가 쓴 글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엎어 버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글은 완성될 수 없다. 완성된 글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과 성취감. 아마 이런 점 때문에 내가 글을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형언하기 힘든 어떤 것이 세상을 흔든다'는 부분을 글이란 인간의 헛됨 속에서 태어나지만, 동시에 세상을 흔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글을 쓰면서 겪는 고통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는 가능성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한 문장, 한 문단을 씨름하며 쌓아 올린 경험들이 모여 비로소 나만의 세계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쓰이지 않은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꿈꾸는 작가 소개는 작품 목록으로만 채운 프로필'이라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책 날개를 펼치면 내 책의 제목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는 없어도 내가 온전히 경험하고 표현한 순간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에 성공과 실패,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만든다. 오늘도 헛된 인간이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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