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 지금 여기, 한국을 관통하는 50개의 시선
김정인 외 지음, 백승헌 외 기획 / 사이드웨이 / 2025년 8월
평점 :
2024년 12월 3일,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진 친위 쿠데타는 뉴스를 보자마자 국회로 달려 나간 국민들의 개입으로 저지당했지만, 계엄 세력이 도발한 내란 상황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이 결정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일각에서는 비상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데에는 윤석열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특성이 아주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상계엄의 원인을 이 정도로 단순하게 정리하기에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해석해 판결한 사법부 카르텔과 비상 계엄의 실패 이후 극우만이 아니라 보수 정당 전체가 보여준 윤석열에 대한 적극적인 동조 행위를 설명하기 어렵다.
12.3 계엄과 이후 내란 상황은 한국이 전형적인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나라임을 재확인해 주었다. 계엄 사태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업부 카르텔과 모피아의 부패 현상은 언제부터 형성된 것일까?
민주화 이후 부패라는 범죄를 수사하고 재판해야 할 법조인들은 학연에 기반한 사법 카르텔을 강화했고, 그렇게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검사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익 집단으로서 순혈주의적인 카르텔을 형성했다. 조직 중심주의와 힘의 논리를 내세웠던 검찰 카르텔은 강고한 순혈주의로 대통령 권력까지 창출해 냈으나 결국 민주화에 역행하는 반동으로 기능하고 말았다.
모피아의 부패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사태를 유발한 원인으로 지적될 만큼 심각했다. 모피아의 주된 역할은 현직 재무 관료들을 상대로 자신이 속한 금융기관의 현안 해결을 위해 로비를 하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모피아를 넘어 관피아라고 불리는 전 부처의 퇴직 고위공직자들이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에 가담하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초기엔 탈기득권을 외치며 엘리트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청년 세대에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구호를 내세웠으나, 12.3 계엄을 통해 본인이야말로 검찰 카르텔의 기반 위에서 대통령에 오른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번 사태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계엄이 실패로 돌아간 후에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극우 세력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내란 세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입장임에도 여전히 윤석열을 지지하며 국민의 저항을 폭도라 부르고, 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이미 상당히 극우화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윤석열이 권력에서 밀려난다고 해도 또 다른 윤석열이 등장할 수 있다는 불안은 바로 이 극우 세력이 여전히 한국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극우적 담론에 끌리게 된 것일까.
한국의 극우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기형적으로 결합하면서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소속감을 찾으려 했다.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한 개인 방송이 확산되며 가짜 뉴스와 혐오 표현이 급속하게 퍼졌고, 그 사이에서 등장한 새로운 보수 담론은 기존의 전통적 보수와는 다른 극우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증폭된 증오와 극단성은 결국 현실 세계의 폭력으로 이어졌고, 무고한 시민들과 사회 전체에 큰 피해로 돌아오게 되었다.
극우 세력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단연코 눈에 띄던 것은 강추위 속에서 눈을 맞으면서도 광장에 나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2030 여성들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집회 풍경을 바꿔 놓았다. 기성세대가 들었던 촛불을 이어받고, 거기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더한 응원봉 집회는 지금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위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 과거에는 광장에 나온 여성들을 이색적인 현상인 양 취급했지만,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2030 여성들은 여성 관련 의제가 불거졌을 때마다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지금은 2030 여성들은 부당하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 배제에 고통받아 온 이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이들과 함께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존재다. 과거에는 집회에서조차 대의를 위해 소수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서가 있었지만, 이번 탄핵 집회에서는 여성들이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주체로서 역할을 다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광장이 될수록 소수자들도 안전함을 느끼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기 마련이다. 비상행동 탄핵 집회가 매주 집회 시작 전 사회자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평등약속문을 안내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리고 이렇게 광장으로부터 힘을 얻은 이들이 이제는 기존 시민운동이 집중하던 사안들에 연대로 화답했다.
〈그러므로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와 위험을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동시에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가능성을 시민들의 행동 속에서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나도 국회의사당 앞에 나가 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낯선 이들과 구호를 외치며 혼자가 아닌 공동체 속에서 힘을 얻는다는 감각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포용과 연대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임을 실감하면서, 책에서 지적한 극우화와 엘리트 카르텔의 위험을 견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은 시민들의 단결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