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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 훈련된 외교관의 시각으로 풀어낸 에도시대 이야기
신상목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7년 8월
평점 :
우연하게 서문을 읽어보니 저가가 강한 문제의식을 표명하고 있어서 나름의 깊이 있는 뭔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은 에도시대에 상당한 발전이 있었고 이러한 발전은 일본이 빠르게 서구제국구의 국가를 따라잡는 기반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별로 새롭지 않다. 일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주장을 이미 읽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폴 발리의 "일본문화사"에 따르면 에도 시대 이전에도 이미 일본은 아주 오래전부터 풍부한 문명을 발달시켜 온 것을 알 수 있다.
저자가 책 제목으로 달고 있는 것처럼 우리 고교 교과서는 이런 일본의 발전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일본의 참모습을 일부러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교과서가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수는 없다. 사실 우리 교과서는 미국의 교과서에 비해서 분량이 1/3도 안된다. 교과서 지식이 필요한 지식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틀렸을 뿐이다. 우리 사회가 고등학교 졸업 때의 점수로 사람들 평가하고 대우하다 보니 고등학교 교과서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기초일 뿐이고 인생을 통해서 꾸준히 지식을 보충해야 한다는 상식이 회복되어야 할 뿐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을 저술한 목적으로 "일본 근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한국 근대화의 뿌리를 찾는 과정으로의 의미가 있다"라고 쓰고 있다. 아마도 한국사회의 경제발전의 뿌리를 일본식민지 시대에서 찾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장의 잘못은 중국의 경제발전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중국에서 일본의 역할이란 분탕질 말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인은 과학기술 논문 발표에서도 이미 유럽 출신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근대화란 나무가 아닌데, 뿌리가 있어야 할 필요는 어디에 있을까? 동아시아 각국은 서구로부터 자극을 받고,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유럽의 각국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을 이루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처음으로 그러한 과정을 밟았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이 일본이 밟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찾고자 하는 뿌리라는 것은 없다. 굳이 일본이 우리에게 기여한 것이 있다면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일본 주재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한국에 일본문화를 소개하는 데 보다 적절한 수단을 찾기 위해 그만 두고서 우동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외교관을 그만둔 것은 잘한 것 같다. 어설픈 식견으로는 조국에 기여하기 보다는 손실을 끼칠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대신 우동집을 하고 있다니 단순히 일본맛을 그대로 내지 말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우동을 만들기 바란다. 해외 문물을 주체적으로 소화해야 진짜 일본인의 정신을 실현하는 셈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