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건의 길 (양장) - 자유와 신뢰 회복의 정치경제학
박진수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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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회사에서 정년을 하는 분들의 명단에서 저자의 이름을 보았다. 같이 일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명민해 보이시는 얼굴이 인상에 남은 분이었다. 어느새 떠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나에게 남은 햇수를 손가락으로 헤어보았다. 이번주 회사에 배포된 책에서 저자의 이름을 다시 발견하고서 어떤 생각을 남기고 싶으셨나 궁금했다.


저자는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폭넓은 독서와 깊은 사색으로 한국경제의 당면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입시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입제도가 아니라 사회문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듯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경제 문제도 사회, 정치, 경제를 포괄하는 종합적 관점에서 진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사람이 모인 사회에서는 생산, 판매, 분배의 제반 과정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인 거버넌스(governance)가 필요하다. 거버넌스가 사회의 기술, 소득수준에 부응하여 갈등을 조정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 경제가 발전하는 반면 그렇지 못하면 혼란과 지체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과거 산업화 시절에 성장촉진형 거버넌스(growth-enhancing governance)를 구축했었다. 시장기구가 작동하지 않는 시기에 성장촉진형 거버넌스는 공정성을 결여했으나 사회통합을 유지하고 성과주의에 기반한 도전과 학습을 자극해서 빠른 산업화를 뒷받침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계질서, 권위주의, 연고주의, 연공서열에 기반한 성장촉진형 거버넌스는 소득이 상승함에 따라 추격형 경제발전모형의 여지가 축소되면서 위기에 부딪쳤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과거의 성장촉진형 거버넌스를 버리고 시장촉진형 거버넌스(market-enhancing goverance)로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공적제도에서 경쟁을 도입하고 투명성을 강제하고 있으나 사회문화로 대변되는 비공식제도는 여전히 과거 관행에 머물다보니 오히려 부작용만 두드러지고 있다. 경쟁은 숨막히는 각자도생의 정글로, 투명성은 은밀한 내부거래와 복지부동으로 변했다. 

한국사회는 한마디로 불신의 사회이다. 고발 고소 건수는 일본에 비해 80배나 많은데도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는 OECD 국가중 꼴찌이다. 노사간 신뢰가 없어서 노동시장은 경직되고 사회부조 도입은 미미하다. 강자인 대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다양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정치화도 문제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억압받았던 소외계층이 정치권력을 획득하여 기득권층과 대립함으로써 모든 것을 이념 논쟁으로 바꾸고 있다. 

한국사회는 승자독식의 사회이기도 하다. 정치와 경제를 가릴 것 없이 매사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게임이 되었고 정의나 공정과 같은 힘의 논리에 반하는 가치는 헌신짝 취급을 받는다. 이기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힘의 논리가 팽배하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포풀리즘의 본질은 너와 나를 구분하고 상대를 배격하는 데 있다. 소외계층의 포풀리즘과 기득권이 파시즘만이 횡행하고 있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역량강화(empowerment)를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역량강화는 인간에 대한 인식을 지시와 통제의 대상에서 자주적 인격의 독립적 행동 주체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먼저 리더는 조직원을 배려하고 지적자극을 통해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조직원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맡은 일을 더 잘하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권한의 하부위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타협과 설득을 통한 쌍방의 이해와 협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다. 조직문화 개선을 국민운동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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