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랑시에르가 쓴 <이미지의 운명>이 출판되었습니다. 출판된 지 거의 10년 후의 일입니다. 원래 제가 번역할 것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덕분에 '미학/감성학'에 대한 문외한이었던 제가 많은 공부와 고민과 자극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원래 예정했던 옮긴이의 말을 1/10 정도로 줄이긴 했지만, '미학/감성학'에 관한 랑시에르의 사유가 아주 밀도 있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구체적인 전시회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는 능력은,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랑시에르의 사유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와 관련된 여러 글들을 차차 공개할 생각입니다. 여기와 블로그에 동시에 업로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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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좋은 번역을 위해, 그리고 옮긴이의 말을 정성스럽게 쓰기 위해 출판이 많이 지체되기는 했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를 성찰하고 극복하는 데 있어서 보다 발본적인 문제 제기를 담고 있습니다. 많은 독서와 논의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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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는 수단 - 정치에 관한 11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지음, 김상운.양창렬 옮김 / 난장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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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정치 전통을 거꾸로 세우다

인민·인권·주권 등 주요 개념들의 전복적 해석 선보여
 

베네치아 건축대학 교수 조르조 아감벤은 현재 유럽지성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비평가다. 1966년부터 ‘르 토르’ 세미나에 참여하며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받은 그는 1979년 발터 벤야님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로 일하면서 하이데거와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된다. 그 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안토니오 네그리 등 20세기 대표 지성인과 교류한 그는 1995년부터 ‘호모 사케르’ 연작을 선보이며 사유의 거장 반열에 오른다.
신간 <목적 없는 수단>은 그가 미학자에서 정치철학자로 본격적으로 자리매김한 <도래하는 공동체>(1990) 발표 이후 약 5년에 걸쳐 집필한 책이다. 11개의 작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는 서구 정치철학의 바탕이 되어 온 주요 개념들(삶, 언어활동, 인민, 인권, 주권 등)을 전복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규칙이 됐음을 가르쳐준다- 벤야민의 이 진단은 벌써 50년이 지난 것이지만 그 시의성을 전혀 잃지 않았다. …… 주권의 벌거벗은 생명이 그동안 도처에서 지배적인 삶의 형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17페이지)

아감벤은 현 시점에서 정치의 본래 임무는 ‘행복한 삶’의 실현에 있지만, 정작 행복한 삶이라는 정치철학의 기초는 그동안 인간을 특정한 귀속 조건(국민, 시민, 프롤레타리아 등)에 속한 주체로 만들어왔던 국민국가에 의해 무시되거나 억압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라는 개념 자체, 근대 지배적 국가형태로서의 국민국가, 모든 정치의 운영원리로 여겨지는 민주주의, 법에 근거한 권리와 인권의 보장을 다시 의심한다. 서구 정치전통의 모든 범주를 거꾸로 세움으로써 그가 궁극적으로 사유하려는 것은 정치 본연의 임무, 행복한 삶이다. 살아 있음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가 되는 삶이 정치철학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이다.

아감벤 사유를 관통하는 ‘예외상태’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목적을 위해 치달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주권권력의 작동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호모 사케르’란 이런 예외상태 속에서 주권권력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을 서막으로 이후 20년간 저자가 일관되게 사유하는 테마는 더 이상 주권권력이 자신의 고유한 주체를 만들기 위해서 전제하는 벌거벗은 생명이지 않을 수 있는 삶, 행복한 삶의 구축이라 할 수 있다.

<호모 사케르>, <예외상태> 등 국내 막 쏟아지기 시작한 아감벤의 저서는 벌써 지성계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미학적 글쓰기의 정점을 보여주는 그의 책을 액면 그대로 읽어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책의 역자가 170매 가량의 한국어판 해설을 따로 덧붙인 이유다.

아감벤 정치철학 사유의 원형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터다. (이윤주 기자 | misslee@hk.co.k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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