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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의 산책 ㅣ MoMA 꼬마 예술가 그림책 5
사만사 프리드만 지음, 크리스티나 피에로판 그림, 최순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7년 4월
평점 :
『드가의 산책』
사만사 프리드만 글/크리스티나 피에로판 그림/최순희 역| 주니어RHK|2017년 04월 05일
가끔 내가 사는 지금, 여기를 고스란히 박제해두고 싶을 때가 있다. 기록이나 사진 혹은 영상으로 순간을 포착한다고 해도 담아내지 못하는 어느 한 순간을.
‘드가의 산책’을 쓴 사만사 프리드만은 19세기의 프랑스 파리를 걷고 있는 에드가 드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책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책은 미국 뉴욕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MoMA)에서 큐레이터로 활약하며 ‘마티스의 정원’을 쓴 프리드만의 또 다른 인상파 화가를 다룬 그림책이다.
2014년 MoMA가 기획안 꼬마 예술그림책 컬렉션(MoMA Books for Children)의 7권 중 하나인 ‘드가의 산책’은 19세기 프랑스 파리의 일상 속으로 독자를 자유자재로 이끈다.
‘백년의 평화’라고 불리던 1815년에서 1914년 사이 유럽은 산업혁명, 7월 혁명, 제국주의, 최초의 지하철 등장까지 격동의 파고를 넘나들고 있었다. 예전과 다르게 북적거리는 도시 풍경을 꼼꼼히 관찰하며 변화와 활기의 현장을 체험하는 드가. 그리고 드가를 따라 다니며 그의 눈에 비친 풍경과 사람들, 물건들에 주목하고 드가의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담아내는 작가의 섬세함 덕분에 마치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을 여행하는 듯하다.
드가의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발레리나들, 세탁하는 여인들, 쇼핑하는 여자, 어린 여자아이들이 크리스티나 피에로판에 의해 구석구석 존재감을 빛낸다. 광장의 바닥 타일 모양과 건물의 창틀, 그 위를 살금살금 걷는 고양이, 드가의 캔버스와 붓이 있는 작업실 전경까지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드가가 최대한 포착하고 싶어 했던 일상의 찰나를 담고 있다. 그토록 활기차고 볼거리가 풍성했던 파리의 모습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러다 한동안 모든 것이 고요해졌습니다’로 끝나 궁금증을 유발한다. 모두가 잠든 밤의 고요가 아니라면 불안한 침묵을 타고 엄습하는 1차 세계대전의 예고가 아닐지?
일상 또는 대상은 그것을 표현하는 작가에 의해 순간의 영감과 느낌으로 살아난다는 것을 강조한 모네, 마티스, 드가, 세잔느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 특히 꽃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겉모습으로만 여성의 미를 담지 않았던 드가는 무대 뒤, 인내하는 삶의 고통, 비참하고 슬픈 소외된 인간상을 쫓고 있다. 마치 인생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샅샅이 헤쳐보아야 비로소 조금씩 보이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2021. 3. 22. 이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