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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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누군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라고 물었을 때 늘 대답했던 곳이 바로 '타히티' 라는 섬이었다. 오래 전에 봤던 뮤지컬 영화 <에브리원 세이즈 아이 러브 유> 라는 작품 속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가 '보라보라' 라고 했었는데 그 '보라보라'가 바로 타히티와 근접해 있는 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막연하게 타히티와 보라보라는,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보석처럼 간직된 지상 최대의 낙원이자 꿈의 장소였다. 발리와 보라카이, 푸켓과 피피섬, 괌과 싸이판, 지중해 등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바다와 섬들은 대부분 가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타히티에 대한 소망은 접지 못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에 갈 날이 있겠지...
 
 이렇게 타히티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간직하고 있는 내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무지개>는 거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평소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세계를 무척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특히,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인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니...! <무지개>에 대한 광고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이 책이 읽고 싶어 무척이나 몸이 근질근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대는, 예상대로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만의 살짝은 달착지근하고, 물 흘러가듯 담담한 문체(아... 나는 정말이지 바나나의 소설을 사랑한다!)와 직접 타히티에 가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인지 함께 삽입되어 있는 아름다운 삽화와 사진들마저 순식간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본의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바다와 함께 자란 에이코. 때묻지 않은 환경의 영향으로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식당을 정리하고 도쿄에 올라와 홀로서기를 시작한 에이코는 '무지개'라는 이름의 타히티안 레스토랑에 취직하게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타히티의 문화와 음식을 접하면서 타히티에 대한 환상과 꿈을 가지게 된다.
 무지개 레스토랑의 오너인 다카다는 에이코의 동경의 대상으로 이십대 때부터 타히티에서 생활하며 친환경적인 가치관이 몸에 밴 매력적인 남자다. 그는 동물을 끔찍히 사랑하고 정이 깊지만, 그의 아내는 그런 그와는 정반대로 어느 정도 속물적인 도시 여자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 이후 세상에서 오직 홀로 남게 된 에이코는 그 충격으로 정신적 피로를 호소하고 잠시 레스토랑 일을 쉬면서 그대신, 오너 다카다의 집에서 잠시 요양을 하며 가정부 생활을 하게 된다. 늘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오너. 버려진 동물조차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는 오너. 인위적인 꾸밈보다는 자연스런 생활에 훨씬 만족하는 오너. 그런 오너의 모습과는 달리 삭막하기만 한 집안의 풍경에 다소 놀란 에이코는 자신이 가정부로 있는 동안, 이 집안의 무미건조함을 생기발랄한 자연의 향기로 가득차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계기로 에이코와 다카다는 서로에게 깊은 연민과 호감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사랑을 고백하는 오너와 유부남인 그에게 쉽게 마음을 내주지 못한 채 혼란스럽기만 한 에이코. 이런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에이코는 결국 오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꿈에 그리던 장소이자 오너의 아름다운 청춘이 담겨있는 곳, 타히티에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아름다운 섬 타히티에서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에이코의 모습은 고요한 수면 위에 잔잔히 아로새겨진 물결 같다. 순리대로 산다는 것. 자연의 힘에 역행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다운가. 우리 모두는 늘 무엇인가에 쫓기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것은 모두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욕심' 때문이다. 타히티 안에서는 욕심도, 절망도, 슬픔도 없다.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바람의 소리와 잔잔한 파문을 그리며 물결치는 넓은 바다만이 조용히 인간의 삶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름답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순간들...
 '머나먼 아득한 미래는 생각하지 말 것. 지금 사랑한다면, 현재의 사랑에 온 힘을 다해 충실할 것.'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한 대지의 울림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다. 에이코와 다카다의 예쁜 사랑을 보면서 어쩐지 가슴이 말랑말랑해진 느낌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세상 어디에도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저 그들 위에 찬란하게 펼쳐져 있는 '무지개'만이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을 뿐.  
 
 '우리의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된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문학'이라는 문학관을 가진 요시모토 바나나. 그의 문학관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조금도 거추장스럽지 않게. 소소하고 담백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으로. 적어도 '나'라는 독자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구원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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