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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명 ㅣ 우리시대 질문총서 3
얀 지에론카 지음, 김남국 옮김 /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 2020년 2월
평점 :
‘반혁명’. 혁명이나 그것에 의해 이루어진 상태를 반대하거나 이전 상태로 되돌리려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단어이다. 격동의 20세기보다는 훨씬 안온한 21세기를 사는 내 입장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는 현대사회에서는 듣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그런 혁명이라는 단어를 약간 비튼 반혁명이라는 단어. 저자인 얀 지에론카는 1989년 동유럽에서의 혁명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을 반혁명의 시대라고 정의하면서 왜 반자유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고, 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자유주의는 쇠퇴하는지 고찰한다. 그렇게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혁명적 사회변화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이 책에 담았다.
1989년의 동유럽 혁명은 약 40년간의 기나긴 냉전을 종식시키며 철의 장막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블록을 붕괴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당시 사람들은 더 이상 핵 위협을 포함한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되며, 자유주의에 입각한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두가 낙관적으로 미래를 바라봤다. 하지만 약 30년이 지난 현재, 유럽에서는 반 이민, 반 세계화 등을 외치며 민족주의를 선동하는 등,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30년 전의 혁명에 반(反)하는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이 결국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평등과 자유라는 기본 원칙을 훼손할 것이라며 매우 우려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이 어째서 일어났는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저자인 얀 지에론카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불평등의 확산, 그리고 그 상황속에서 자유주의 진영이 보였던 실책들 때문이라고 보았다. 70년대, 영국병, 오일쇼크, 그로 인해 일어난 스테그플레이션 등, 수정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났다. 이때 로널드 레이건, 마거릿 대처 등이 정권을 잡으며 밀어붙인 일련의 정책들이 있었다. 이는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 등으로 불렸다. 그렇게 80년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수정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해내며 수많은 찬사를 받았으나, 만만찮은 부작용이 속속 등장했다.
그 중 제일 심각한 부작용은 바로 빈부격차 문제였다. 저자는 책에서 타 국가에 비해 심한 폴란드의 빈부격차와, 서유럽 특히 독일로 부가 쏠리며 EU 내에서도 심해지는 빈부격차를 꼬집으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별다른 조치 혹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단 시간을 끌며 시대상황에 편승해버렸던 지금까지의 기성 자유주의자 및 정치인들 때문에 반혁명 세력이 대중들을 휘어잡기 쉽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108페이지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으로의 자유는 임금인상을 억제할 자유를 의미한다. 규제로부터의 자유는 강을 오염시키고, 노동자를 위험에 빠트리고, 부당한 금리를 부과하고, 낯선 금융기관을 고안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세금으로부터의 자유는 사람들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하는 분배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 조지 몬비오 (George Monbiot)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자유가 이렇게 선택적으로, 좋지 않게 말한다면 편협하게 사용되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2008년의 경제위기와 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죽어났던 것은 일반 서민들과 가난한 나라들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안 그래도 심했던 양극화는 더더욱 악화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이 있는 신자유주의를 왜 아직도 세계는 고수하는 것일까. 저자는 기성 자유주의자들로 대표되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인기와 표가 떨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며 사태를 방치했다고 힐난한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EU의 무능함도 같이 꼬집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반혁명의 물결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의 회복을 꾀할 수 있을까. 저자는 21세기 유럽에 걸맞는 새로운 자유주의의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이민자들에 대한 원색적 비난보다는, 전 국민이 함께하는 이민 문제에 대한 열린 대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처럼 특히 저자는 비판과 대화 및 토론의 힘이 자유롭게 사용되는 ‘열린 사회’를 주술적인 힘에 복종하는 ‘부족 사회’와 비교한다. EU의 무능함을 꼬집기는 했으나 저자는 여전히 EU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초국가적 규제를 실험하고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여 ‘EU가 무엇인가를 해야 함’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에 그는 현재의 수직적인 EU가 아닌, 수평으로 구성된 다양한 네트워크들을 갖춘 EU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전제로 저자는 유럽과 자유주의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확신하고 있다.
이 책은 평범한 대중교양서는 아니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유럽의 정세 및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읽기 좋은 책일 듯하다. 유럽의 반혁명 적 기조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유럽의 반혁명세력의 현주소를 먼저 살펴보는 초반부, 유럽의 반혁명세력과 반혁명운동의 기원을 알아보는 중반부를 넘어, 반혁명세력에 대처할 자유주의 진영의 해결책을 알아보는 후반부까지의 짜임새가 튼튼하여 쉽게 몰입하여 읽을 수 있다.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고 하여 못 읽을 만큼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논문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유럽 내 반혁명운동’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글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읽기 쉬운 편에 속한다. 이 글을 이런 책으로 내 주어 논문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나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해준 출판사에게도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