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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징 ㅣ 레드 라이징
피어스 브라운 지음, 이원열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1월
평점 :
1. 레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채 비통하게 죽은 자들.
최상층 골드부터 최하층 레드까지, 태어날 때 정해진 색에 따라 계급이 정해져 있는 미래 사회. 그 중 레드들은 인류가 살아갈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화성의 지하에서 테라포밍(지구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일은 화성 지층까지 내려가 광물을 캐는 것으로 상당히 고되다.
주인공 대로우는 레드로, 어린 나이임에도 능력을 인정받아 ‘헬다이버’로 일하고 있다. 이쯤되면 모두 예상하실 수 있을 듯한데, 소설 ‘레드라이징’은 이렇듯 최하위계층인 레드소년 ‘대로우’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계의 규칙을 무너뜨리는 얘기다. 그런데 대로우가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넌 꿈을 위해 죽는 게 가치가 있다는 거잖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고. 넌 서서 죽는 게 낫다는 거지. 난 무릎을 꿇고 사는 게 낫다고 하고.” (69)
소설의 초반, 대로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인물로 나온다. 그가 변화하게 되는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 이오 때문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날 거라는 꿈을 위해 살아. 내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꿈. 아이들이 자기 ‘아버지’가 준 땅을 가지게 될 거라는 꿈.”
“난 널 위해 사는데.” 내가 슬프게 말하자 이오가 내 뺨에 키스한다.
“그러면 넌 더 나은 것을 위해 살아야 돼.” (69)
이는 얼핏 ‘헝거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헝거게임의 캣니스도 처음엔 그저 보통 소녀였으나, 동생 ‘프림’을 대신해 헝거게임에 참가하게 되며 진실을 알게 되고, 끝내 혁명의 주인공이 된다. 그렇다면 두 작품이 너무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레드라이징’은 ‘헝거게임’과 분명 다른 부분이 있다.
“하늘, 한때는 그저 단어에 불과했던 말이다.” (61)
이오를 따라 나선 대로우는 숲을 발견한다. 레드들이 지하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이유가 화성을 지구처럼 테라포밍하기 위해서였다고 알아온 대로우는 큰 충격을 받는다. 화성의 테라포밍은 이미 성공했고, 누군가 레드들이 계속 지하에서 일을 하도록 진실을 감춰왔던 것이다.
헝거게임 속 13구역의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폭정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이 책의 레드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내 알지 못한 채 비통하게 죽는다. 그리고 대로우 또한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 말 할 수 없지만) 죽는다.
2. 골드, 보았으나 알지 못하고 비루하게 살아남은 자들.
한 비밀 집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죽음에서 돌아온 대로우는 지상으로 향한다. 이 세계의 진실에 관해 조금씩 알게 되는 대로우. 자신은 레드 중에도 로우레드로,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한 채 가족과 동료의 죽음을 비통하게 바라보기만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가 노예라는 것을 알았다면 더 행복했겠니? 아닐걸. 하이레드들이 알았던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더 행복해졌을 사람은 화성 땅 밑에 있는 10억 명의 로우레드중 하나도 없어. 자기가 노예라는 사실 말이지.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니?”
“노예를 만들지 않는 편이 낫죠.” (157)
이제 대로우는 화성을 지구화 시키는 것처럼, 레드인 자신의 몸을 골드로 바꾸는데 동의한다. 골드가 된 그는,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지상 위에 살고 있는 하이레드의 삶이라고 해서 로우레드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골드가 아닌 모든 컬러들의 삶도 마찬가지로 노예의 삶이라는 것을.
브라운 하나가 부엌으로 간다. 핑크 여성이 내 어깨를 마사지한다. 마테오가 내 방에서 구두를 닦는다. 물론 이런 일들을 하는 기계들이 있지만, 골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기계로 하지 않는다. 권력을 써야 하니 말이다. (202)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골드의 인생이란 참 좋겠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보고도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인물에게 이입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먹이사슬의 맨 아랫단에 있으면서도 꼭대기에 있는 이에게 이입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그러나 곧 골드의 삶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음이 드러난다. 진정한 골드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골드 안에서 펼쳐지는 목숨을 건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시스템이야. 낮은 컬러들은 촉진제를 사용해 아이를 낳아. 빨리 낳지. 고작 5개월만 임신한 다음 분만을 유도할 때도 있어. 옵시디언을 제외하면 우리만 9개월 동안 기다렸다가 태어나. 우리 어머니들은 촉진제도, 진정제도, 핵도 받지 않아. 왜 그런지 자문해 본 적 있어?”
“순수한 제품을 낳기 위해.”
“그것, 그리고 자연에게 우리를 죽일 기회를 주기 위해서야. 품질관리 위원회는 골드 아이들 중 13.6213%가 돌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굳게 믿어. 가끔은 현실을 이 숫자에 맞출 때도 있어.” (253)
골드가 되어 골드의 교육기관에 들어간 대로우는 이제 강한 골드가 약한 골드를 죽이고, 노예로 삼는 전장 한 가운데 놓이게 된다. 그리고 자신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골드를 죽여야 하는데...
3. 레드라이징, 비통하게 살아남은 자가 부르는 노래.
대로우가 골드가 되어 이 시스템을 무너트리리라 마음먹은 것은 비통하게 죽은 레드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골드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대로우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에 관한 대답이 바로 이 책의 중반 이후를 차지한다. 그리고 후속편에도 이어질 것이다.
“깊은 곳에 빠졌는데 수영하지 않으면 빠져죽어. 그러니까 계속 수영해야겠지?” (252)
사실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의 승리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예상하듯 대로우는 골드의 세계에서 골드를 이기는 골드가 될 것이고, 레드의 내면과 골드의 외면을 가진 인물로 끊임없는 내적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더 많은 사건들이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
“권력을 잡았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527)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무한경쟁 시스템.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 땅의 청소년들과 성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가르칠 수도 없다. 그 무한 경쟁에 내몰려 조금의 틈도 에너지조차도 가지지 못하는 이들을 붙잡고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재미가 있다면 어떨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토론회를 벌이는 것보다 TV 예능에서 하는 풍자 코미디가 훨씬 폐부를 찌르는데 효과적이지 않은가.
소설 ‘레드라이징’은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다. 주인공 대로우가 레드로서 골드의 세계를 헤쳐 나가는 영웅 서사적 재미와 테라포밍한 화성에서 무한 경쟁에 내몰린 지금 우리의 모습을 경고하는 의미까지. 재미는 의미있는 것이고, 의미가 재미있는 것이란 말의 예를 찾으라면 바로 소설 ‘레드라이징’이 그렇다.
적자생존의 법칙을 생의 법칙으로 알아온 사람들, 살아가는 것은 배웠으나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 바로 지금의 우리가 읽어 봄 직한 책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후속편 두 권을 기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