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

1933년. 연쇄살인이라는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 소설은 열세살 소년 해리의 시점에서 서술됩니다. 동생 톰과 함께 강가 저지대를 헤매던 해리는 잔혹하게 살해된 흑인 여성의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피해자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다만 지역 경관이자 해리의 아버지인 제이콥만이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하죠.


“영감님 생각은 흑인이 흑인을 죽이는 건 괜찮고......”

“그렇지.”

“...... 거기에 대해선 아무 조치를 하지 않다고 상관없지만, 백인 여자가 죽을 수도 있으니 이 살인자를 잡아야 한다는 소린가요. 그런 겁니까?”

“깜둥이는 죽어봐야 아쉬울 것 없단 얘기야.”

“만약 살인자가 백인이라면?”

“그렇다 해도 아쉬울 거 없지. 하지만 분명 깜둥이일 거야. 내 말 명심하라고. 그리고 그 살인 짓이 그냥 깜둥이들로만 끝나진 않을걸.” (162) 


호기심 많고 어른들의 세상에 하루 빨리 편입되고 싶은 소년 해리는 아버지 제이콥이 사건을 파헤치는 동안 그의 곁을 맴돕니다. 그리고 평범하게 보이기만 하던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각기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흑인이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 단언하는 사람들. 평범하기 그지없는 마을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은 오히려 해리의 가족이었습니다. 해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증오는 쉬워, 해리. 흑인이 뭘 했다거나 안 해서 이런저런 일이 벌어진 거라 말하기는 쉽지만, 인생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경관 일을 하면서 최악의 인간들을 여럿 봤고, 백인도 있었고, 흑인도 있었어. 피부색은 선악과 아무 관계가 없어. 명심해 둬라.” (189-190)


하지만 목격자인지 용의자인지 가늠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흑인이었죠. 그것도 나이가 많고 가난하며 소문이 좋지 않은, 완벽한 타자이자 약자였습니다. 아직 어린 해리조차도 그가 살인을 저지르기엔 나이가 많고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확증이 아니라 작은 혐의였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처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깁니다. 범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죠. 마을의 소요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누군가 이 사건에 대해 처벌을 받아야만 했고, 그는 흑인이었으니까요.


2. 

사실 이 소설은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작품입니다. 뭐랄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불충분 하달까요. 소설이 품고 있는 분위기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반드시 읽어야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연쇄살인이라고 하는 미스터리를 뺀다고 해도 한 편의 소설이 만들어지기 충분할 만큼 인물들이 갖추고 있는 드라마가 너무나 탄탄했습니다. 책 뒷면에 “너무나 생생해서 습한 늪지대와 텍사스 동부의 송진이 그대로 느껴지는 문장”이라는 추천의 글이 적혀있는데요. 이 작품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라면 저도 딱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당대의 사회, 사람들, 그들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지금 살고 있는 작가가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어요.


실화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사실성. 제가 그 시대 미국을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이 작품이 사실성을 갖추고 있다고 확언하는 이유는 바로 인물들 때문일 거예요. 모든 인물들이 다 그럴법한 사실성을 획득하고 있거든요. 어떤 사실성이냐... 바로 평범함이었는데요.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으나 그 위에 세워진 사람들의 마을에는 이미 얽히고설킨 관계가 생겨나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는 인종차별이 상흔처럼 남아 있었죠. 기존의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아온 극적이고 폭력적인 인종차별 현장이라기 보단, 그 과도기를 지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 인종차별의 현장을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흑인한테는 백인 같은 도덕관념이 없다고 여기거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얘야. 흑인들도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 많고, 몹쓸 사람들도 많아. 백인이든 흑인이든 온전히 한쪽으로 치우치진 않았지. 다 섞여 있어. 좋은 사람이란 건 그 섞인 것이 대개 더 나은 쪽인 거고.” (202)


그리고 이를 그려내기 위해 열세살 소년의 시점을 선택한 것이 이 소설이 갖춘 신의 한수라고 생각하는데요. 열세살, 주변 어른들의 생각을 당연하다 여기고 흡수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나이. 흑인은 악하다고 말하는 다수의 마을 사람들과 피부색으로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가족들 사이에 놓인 열세살 소년 해리를 통해 사람의 사고가 어떻게 정립되고 그것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내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리가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 절치부심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도 참 흥미로운 지점이었는데요. 해리는 그저 이 살인사건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범인을 잡고 싶어 할 뿐입니다. 어른들의 서로 다른 생각에 대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궁금해 하는 정도랄까요. 엄청 깊은 생각에 빠지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하지 않고 딱 그 나이 소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이게 참 사실적이고 좋더라구요.

 

사실 이 소설에서 범인을 추리해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도입부에서 알아차리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줄거리 설명이 중요하지 않은 만큼 이 소설에선 범인도 그닥 중요하지 않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때문에 언제나 과도기잖아요. 그 평범함을 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소설입니다. 올해가 아직 세 달이나 남았지만 올해의 베스트로 이 책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네요. 일단 읽어보시길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사람들은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른단다, 해리. 하지말걸 그랬다 싶은 일, 하지만 돌이킬 순 없지. 극복하든 회피하든, 그 사실과 함께 살아가야 해.” (2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