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세트] [BL] 야쿠자가 사랑을 한다면 (외전 포함) (총3권/완결)
모리미 / 로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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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설정 탓인지 시작 장면부터 머릿속에 일본 만화가 그려지는 기분이었어요. 색다른 감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외국인 설정은 제법 봤지만, 일본인이 주인공인 글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더라고요. 일본 이름을 언제나 만화를 통해서만 만나 봤으니, 자동으로 그림체가 떠오른 게 이상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용 자체도 만화에 걸맞은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다 보니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어요. 사실 제목의 야쿠자 소재부터 큰 노력 없이 상상이 가능하게 만들죠. 아이가 등장하는 작품을 꺼리는 편임에도 이 글을 무리 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건, 이야기가 그림처럼 생생하게 펼쳐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가 등장하는 글은 괜히 어색해서 꺼리지만, 만화는 귀엽다며 잘 보거든요. 귀여운 켄타의 얼굴이 긴 묘사 없이도 쉽게 그려져서 즐거웠어요.
어쨌든, 작품은 시작부터 가볍고 통통 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자신을 마마라고 부르는 어린아이, 야쿠자의 등장, 애인의 배신으로 한순간 빚더미에 앉은 주인공, 말도 안 되는 계약. 주렁주렁 나오는 것들마다 다소 뻔한. 하지만 언제봐도 즐거운 설정들이었어요. 빚을 감해주겠다며 계약을 제시한 주인공에게 반강제로 휩쓸려 아이의 마마로 지내게 되는 민준. 잔뜩 겁을 먹고도 할 말은 해버리는 성격답게 급작스러운 상황에도 금방 적응을 합니다.
어쩌면 주인공 다이키가 험악한 배경과 비교해 느슨한 분위기를 풍겨서 적응이 빨랐는지도 모르겠어요. 첫 만남에서부터 다짜고짜 검사를 한다며 진도를 확 빼버리는데, 그 와중에도 솔직한 민준은 겁먹은 체할 정신도 놓쳐버리고 홀딱 빠지거든요. 부하들을 내보내는 나름의 예의도 갖춰주고(한두 단계 늦긴 했지만요) 취향이 아님에도 끝까지 책임져주고 정신 빼놓고 아무 말이나 뱉는 민준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토록 친절한 고용주라니, 적응이 빠를 수밖에요. 계약도 나름대로 파격적인 조건에 고용 환경이 나쁘지도 않아요. 소리를 지르며 제한을 많이 둔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가 안 되면 다른 하나는 허락해주는 나름대로 마음씨 좋은 고용주입니다.
아이가 등장하는 글의 가장 큰 장점이 아이가 두 주인공의 관계 진전에 큰 역할을 해준다는 점인데요. 이 작품 역시 그랬습니다. 토마를 계기로 두 사람의 사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좁혀집니다. 무슨 일이든 마마와 파파를 부르는 토마 덕분에 두 사람은 싫어도 마주 앉고 사소한 일상 틈틈이 영상 통화를 하거나 심지어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해요. 자연스러운 그 과정을 통해 둘은 어느새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갑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내던 민준과 자신답지 않은 동요가 당황스러운 다이키. 뒤숭숭한 속마음과 달리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에게 변화가 찾아온 건 다이키가 여자를 데려오면서부터. 토마와 자신이 있는 집에 여자를 데려와 잠자리를 갖는 다이키에게 민준은 큰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외면해오던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게 되죠.
마음을 깨달았지만, 배신감이 훨씬 더 컸기에 이런 마음 따위 접어버리겠다 되레 큰소리치죠. 하지만. 실연을 겪은 사람이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것이 있었으니. 민준은 알코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맙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연 후 술독에 빠져 보는 사람 얼굴마저 붉어지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흑역사를 적립하게 돼요.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엉망진창인 꼴을 보인 상대는 한창 민준에게 온 신경이 흔들흔들하는 중인 다이키. 깔깔깔 절로 웃음이 쏟아질 꼴을 보고도 비웃기는커녕 넌 내가 좋은 거냐 본격적인 연애물을 찍기 시작합니다.
이 답답한 사람들 드디어 감정 진도를 나가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풀리지 않아요. 야쿠자 설정이라면 안 나오면 섭섭한 민준의 여장. 이츠키는 물론 그 다이키마저 순간 멈칫할 만큼 그럴싸한 기모노 차림을 하고, 유리아라는 가명으로 토마의 마마로서 인사를 가게 됩니다.
시험하듯 던져진 질문에 진심 반 상황 모면 반, 어쩌면 진심만 가득 담긴 답변을 내놓고 한숨 돌렸다 싶은 찰나, 둘 사이의 급진전을 위한 이물질이 등장해주시고, 둘의 사이는 다소 과격하지만 확실하게,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일단 한 번 이 길이구나 결심하고부터는 망설일 게 없죠. 다이키는 물론 민준도 자신의 마음과 몸에 솔직합니다.
하지만 알콩달콩 연애에만 빠져 지내기엔 다이키의 직업이 심상찮다 보니, 끊임없이 불안과 위기가 이어집니다. 작품 전반적인 분위기가 명랑 쾌활해서 큰 걱정 없이 넘길 수 있는 굴곡이었지만,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에요. 귀여운 토마와 와중에도 태평하게 마이웨이하는 민준 덕분에 저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네요. 처음에는 딱딱하고 성질 밖에 낼 줄 모르는 것 같았던 다이키도 점차 느슨해져서 민준과 주고받는 대화만 봐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글 전체적인 분위기가 가볍고 유쾌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덕분에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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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야쿠자가 사랑을 한다면 (외전 포함) (총3권/완결)
모리미 / 로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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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 그대로의 글입니다. 기대하게 되는 부분들은 확실히 충족시켜주는, 설정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많아요. 지나치게 가벼운 분위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무게를 뺐기 때문에 작품 매력이 잘 산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즐겁게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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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멜로우 (외전) - Another Story 1 [BL] 멜로우 3
니타 지음 / 베아트리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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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후일담을 보고 싶어 혼났습니다. 외전 출시 소식을 들은지 한참인데 신간란에 모습은 모이질 않고, 안절부절 혼자 끙끙 앓았어요. 언제쯤이면 만나볼 수 있으려나 마음 졸이던 때에 드디어! 알라딘에서 출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단번에 달려왔습니다. 기다림이야 언제나 긴 법이지만, 이번은 유독 힘든 시간이었어요 흡ㅜㅜ
외전이 나온 김에 본편도 다시 한번 열어봤어요. 언제 봐도 흐뭇한 두 사람입니다. 짤막한 외전이라 훌쩍 마지막 장을 보게 될 것 같아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연하공의 특징이 잘 살았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연하 설정을 달고 나온 많은 작품을 보았지만 키워드 성격이 잘 드러난 글은 찾아보기 힘들거든요. 보통 호칭 정도의 존재감에 그칠 뿐 나이 차이가 크게 의미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숫자만 몇 개 부족하다뿐이지 능력도 재력도 기타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부족함 따위 없는 인물이 대부분이지요. 물론 이쪽도 나쁘진 않아요ㅎㅎㅎ) 멜로우의 주인공은 나잇값을 톡톡히 해주는 인물입니다. 젊고 어려요.ㅎㅎ
사실 주인공만 따로 떼어보면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닌데 두 주인공 나이 차가 범상치 않아서ㅎㅎ 설정에서부터 해당 키워드를 제대로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팍팍 느껴집니다. 평범하게 한 둘, 넉넉잡아도 손가락 몇 개면 충분할 여느 작품들과 달리 사장님-신입사원(경력직) 관계에 걸맞은. 현실적인 나이 차를 보여주거든요.
나이만큼이나 지위 차이도 큽니다. 앞서 말했듯 사장님과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원, 하늘과 땅 차이죠. 젊은 회사라곤 하지만 어쨌거나 사장님은 사장님이니까요.
거기다 주인공의 나이 외 설정도 소소하게 매력 발산에 힘을 보태줍니다. 적당히 유연하게 사회생활을 하지만 책임감은 크지 않는, 살짝 가벼운 성격의 인물이라 설정이 더욱 실감 났어요. 나름대로 능력 있고 적정선에서 욕심도 부리지만 아직은 노련함이 부족한 흔한 듯 흔치 않은 주인공입니다.
지난 연애 역시 그 순간은 상대에게 충실했지만 깊게 파고들면 결국, 스스로 즐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았죠.
이 작품의 또 다른 매력은 이러한 현실적인 면을 적당한 선에서 잘 살렸다는 점이에요. 주인공은 평범하게 연애하고 사랑을 해온 인물입니다. 물론 진지하게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함사장님이 처음이지만. 감정의 깊이와는 별개로 평범한 연애를 해왔어요. 어쩌면 누군가에겐 내키지 않는 설정일지 모르겠습니다. 전 좋았어요. 평범하게 데이트하고 영화를 보거나 함께 밥을 만들어 먹거나 여행을 하거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주인공이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라는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적당히 취향에 맞는 사람과 연애해온 주인공이 취향과 동떨어진 사장님에게 자꾸만 눈이 가고 관심이 가고 마음이 가고. 마지막 둑인 이성적인 판단을 무시해버린 선택을 해버리고.

결국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멜로우는 그 간질간질한 과정을 실감 나게 잘 그린 작품입니다.
인물의 성격이 가벼운 탓에 시작 부분에선 살짝 화가 치밀 수도 있어요. 주인공이 가벼운 만큼 주변 어울리는 인물들도 만만찮게 가볍고 마음에 차지 않는 면면들이라. 초반의 대화는 삐딱한 마음으로 보게 되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진지해질수록 주인공 역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함사장님도 현실적인 면이 녹아있는 인물입니다. 나이가 쌓이도록 연애를 한 번 해보지 않았다는 점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만(잘생기고 능력 좋은 함사장님인데... 심지어 선 자리도 드문드문 나가는데 매번 잘 안 되죠. 물론 사장님 마음이 콩밭에 가 계신 탓이지만...), 그의 첫사랑 이야기는 누구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할만한 사연이에요.
상대와 같은 마음을 품고도 어긋난 타이밍 탓에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 소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겪을 흔한 사연이죠.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 게 누구냐에 따라 앞으로의 전개는 달라지겠지만, 어긋나버린 인연 정도는 지나가던 엑스트라에도 있을 법한 과거니까요.

흔하고 뻔한 이야기지만 언제봐도 안타까운 이 설정은 우리 함사장님을 오랜 시간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주인공 두 사람 연애사 외엔 철저하게 무관심한 편인데 이 작품 속 과거 연애는 나름 집중해서 봤습니다. 잔잔하게 흐른 서술 덕분에 큰 동요 없이 웃고 안쓰러움에 찡그리고 털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돌고 돌아 다시 한번 맞춰보려고 하지만 이번 시도마저 늦어버리고만, 탄식 없이 볼 수 없을 상대방의 사연 역시 현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용기가 부족했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별수 없죠.  

 

제목의 동글동글 부드러운 어감만큼이나 간질간질한 연애의 시작과 과정을 잘 보여준 글이었어요. 마냥 달콤한 면만을 그린 글은 아니었지만 잔잔하면서도 폭발하듯 열정적이고, 한편으론 영원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을 그려주어서 여러모로 만족스럽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 어리고 살짝 철이 덜 든 연하공 시점이라, 색다른 장면들이 많았어요.
양가 어른들을 모셔 상견례 비슷한(게 아니라 상견례죠...파격적이었습니다 하하...) 자리를 만들어버린 다소 무모한 에피소드에선 얼이 빠져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결과는 좋았으니 웃으며 봤습니다. 함사장님의 노련함이 여기서 빛을 발하네요.
벚꽃을 떠올리게 만드는 따스하고 간질간질한 글이라 갑작스럽게 무거운 전개가 나오진 않을까 염려했는데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흐른 것 같아 좋았어요.

외전이 너무 짧아 아쉬웠지만 기다렸던 두 사람의 후일담을 볼 수 있어 기뻤습니다. 잔잔한 일상, 짧은 에피소드에서도 두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보여서 끝까지 몰입이 깨지지 않았어요. 많이 다른 두 사람, 설렘으로 시작한 연애가 어떠한 형태로 흐를는지 궁금했는데 둘의 차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좁혀가는 모습이 그려져 흐뭇했습니다. 내심 걱정스러웠던 부분을 긁어주신 것 같아 상쾌했어요. 나에게 좀 더 의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나름의 표현으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나, 소소한 후일담 정도를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의 무게 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족스러웠습니다.
애정이 컸던 인물들이라 꾸준히 잊지 못하고 떠올리곤 했는데,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뻤어요. 즐거웠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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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멜로우 (외전) - Another Story 1 [BL] 멜로우 3
니타 지음 / 베아트리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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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후일담을 보게 되어 기쁘네요. 짧은 글에서도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서 많이 웃었습니다. 툴툴거리며 소소한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 나름의 방식으로 상대에게 의지하는 모습. 큰 사건 사고 없는 소소한 일상의 연장이었지만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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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레인보우 피쉬 2 (완결) [BL] 레인보우 피쉬 2
그루 / 비하인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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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구입해놓고 한동안 손이 가질 않아 모셔만 두고 있었습니다. 작가님의 다른 글들도 그렇고, 막상 시작하고 나면 정신없이 몰입해 읽어내려가지만 시작이 항상 어려워요. 이번 렌피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표지의 색감과 키워드.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사전정보의 혼합으로 저도 모르게 질척질척 어두운 뒷골목 밤거리를 상상하고 말았는데요.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주인공 성격을 굉장히 침침한 쪽으로 못 박아뒀습니다... 일단 펼쳐 들고 술술 책장을 넘기면서, 특히 과거 학창시절의 명랑 쾌활한 에피소드를 읽어내려가면서 상상했던 것과 정반대 수준의 인물을 접하곤 많이 당황했어요.
정말 제 예상과는 딴판인 인물이더라고요...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도 맞고, 마냥 밝고 쾌활한 인물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적당히 유연하게 상황을 넘길 줄도 알고 오히려 능숙한 어른이었습니다. 말이 지나치게 없다거나... 땅을 파며 내 인생 왜 이러나 삽질을 한다거나... 아무튼, 예상했던 쪽은 전혀 아니었어요. 쓰면서도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나 싶을 정도네요.

 

주인공 심태경은 특별한 인물입니다. 좀 더 부연설명을 하면 색색의 피쉬가 보이는 능력을 가진 인물이에요. 상대의 성격, 살아온 행적, 마음의 변화 등등 여러 요소에 따라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색이 보여요. 태경은 그것을 피쉬라고 부릅니다. 달리 이유는 없고 마치 물고기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기 때문에요.

 

그런 태경이 첫눈에 반해버린 색이 있습니다. 눈부신 푸른 피쉬를 가진 이람호. 첫인상이 상당히 강렬할 세 글자이지만 주인공 맞습니다. 자주 보기엔 지나치게 독특한 이름 탓에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잔잔한 글 툭 삐져나온 가지처럼 이질적이라 아니 대체 이름이 왜... 싶었습니다. 읽다 보니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갔지만요.
작가님의 글 대부분 그렇듯 레인보우 피쉬의 주인공 역시 가진 것이 많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들에게 흔히 주렁주렁 매달아주곤 하는 지위나 권력 등등 어떤 것 하나 가지지 못했어요. 그에게는 보증 빚을 남기고 잠적해버린 아버지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어머니, 부모님은 한참 전 떠나 계시지 않았고. 대신해 현실의 짐을 험한 말로 자신에게 풀어내는 할머니 한 분 남아계실 뿐이죠.
국가대표가 되어 할머니가 견디는 짐을 덜어야 한다는 책임을 강제 받으며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감량을 위해 뜁니다. 흔한 참한 효자 설정과도 살짝 어긋나 있어요. 어쨌거나 목표를 이뤄 할머니의 고생에 보답한다는 결론은 같지만, 고분고분한 몸과 달리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어찌 보면 이쪽이 더 현실적이고 당연하죠. 모진 말과 탓을 어린아이가 순순히 견디는 건 이상적이기보다 찝찝한 쪽에 가깝지요.
태경은 그런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마음을 깨닫자마자 당돌하게 고백부터 해요.
어린 람호는 다소 삐딱합니다. 평탄하지 않은 현실, 무거운 책임. 가만히 성장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나이인데 그가 감당하고 있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요. 험한 말을 뱉고 참지 못하고 주먹도 내지르죠. 아니면 말지 운동하는 자식이 사람 팬다며 동네 사람 찾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태경에 오히려 당황하고 말지만요.


그리고 이어지는 과거에선 읽는 저조차 깜짝 놀란 태경의 성격이 빛을 발합니다. 직진 직진 직진. 일정 선을 긋고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버리지만, 그 덕인지 주저함도 망설임 따위도 없는 고등학생 태경. 람호는 점점 태경에게 익숙해져 가고, 뜻하지 않는 위로도 받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잠시의 위로만으로 견디기 쉽지 않아요. 마지막 기회라 여긴 국가대표 선발이 결국 좌절되고, 잔뜩 삐딱해진 람호는 태경의 트라우마를 건드려버리고, 상처를 받아버린 둘은 결국 엇갈리고 맙니다.

 

7년의 시간. 어른이 된 태경은 어찌 보면 여전하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상처를 여전히 끌어안고 그럭저럭 무난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죠. 당돌했던 과거와 달리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굴며 다소 이기적인 선택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그에게 7년 전 짝사랑의 상대 이람호가 다시 나타납니다. 당황스러운 말과 함께요.
이제 와 어쩌겠다고. 기가 막힌 태경의 속마음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람호의 등장은 뜬금없고, 늦어도 한참 늦었어요.
하지만 7년, 정확히 말하면 10년 가까운 긴 시간이 지나도록 첫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답답이가 바로 태경이었기 때문에. 늦어도 한참 늦은 재회가 둘 사이에선 남다른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오랜만의 재회에도 단번에 상대를 알아보고 당황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꺼내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버릴 정도로. 태경은 그를 잊지 못했어요.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나 마음을 표현하는 그에게 선뜻 고개를 끄덕일 용기는 없었습니다. 하나둘 쌓인 과거의 상처가 그를 망설이게 했고, 람호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덩달아 태경을 무겁게 만들었어요.
하지만 람호는 과거에도 그랬듯 강한 인내와 끈기로, 그리고 태경이 도리어 불안해질 만큼 천천히, 한 발자국 발자국 신중하게 다가섭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마음의 장애물을 넘고 넘어 결국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레인보우 피쉬는 그 간질간질하고 안달 나는 과정을 담은 글이에요. 사실 부연설명 없이 간질간질만을 붙이기엔 태평함이 부족한 글입니다. 어둑어둑한 레인보우 피쉬의 조명처럼 레인보우 피쉬 글 자체도 불 한두 개 꺼진 것과 같은 침침함이 있어요.
태경의 불안과 망설임, 람호의 솔직한 마음.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춥고 따뜻한 일상. 군데군데 녹아든 설렘까지.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글입니다.
진중한 람호와 겁이 많아진 태경의 느린 과정을 담은 만큼 넘치도록 긴 글이었지만, 막상 끝이 다가오니 언제나 그랬듯 많이 아쉬워졌어요.
착실하게 연애를 시작하고 평범한 데이트도 하고 처음 겪는 연인만의 이벤트도 겪고, 제법 많은 에피소드를 담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드네요.
많지도 적지도 않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에도 호기심이 솟을 만큼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적당한 비중을 한껏 활용한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이 많았어요. 오랜 짝사랑을 마침내 깔끔하게 털어내고 썸남을 만난 김세나씨. 스무 살 트루러브를 찾아 착실하게 흑역사 적립을 하고 계신 허세 기영이. 연애는 100일이 넘지 않는다는 유쾌한 아프리카청춘씨. 잔뜩 가시를 세우고 있지만, 고작 대일밴드 하나에 벽을 허물어버리는 어린 정우. 정말 좋은 어른, 아버지 편의점 사장님과 착하고 순한 경철이.
어째 적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네요. 알고 보니 최악은 아니었던, 나름의 사정과 책임감을 가진 람호의 아버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는 람호의 삶, 비어있던 가족의 자리가 채워진 건 조심스럽지만. 위안이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쉽게 가볍게 말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지난날 어린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지금은 의미를 달리했으면.
첫 시작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네요. 살아 숨 쉬는 색색의 피쉬처럼 다채로운 인물들이 머릿속을 신나게 유영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떨쳐낸 태경이처럼 저도 얼른 감상에서 빠져나와야겠죠. 언젠가 소소하게나마 후일담으로 만나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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