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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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임선경



살면서 가장 꾸준히 한 일은 '나이 먹는 일' 본격 나이 탐구 에세이


나는 지금 갱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갱년기는 '쇠락'과 '상실'의 시기일까? 각종 사회적 의무와 양육의 부담, 여성성의 멍에를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의 시기는 아닐까?

확실한 것은 갱년기는 사춘기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신체가 격변을 겪는 때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춘기처럼 예민하게 느끼고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왕성하게 배우고 무한히 감동하고 그러면서 훌쩍 자랄 수도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 <프롤로그> 중



임선경 작가님은

TV 드라마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이것이 인생이다], [부부클리릭 사랑과 전쟁] 극본을 썼고 애니메이션 시나리오와 소설, 동화, 에세이를 쓰시는 작가님이다. 작가님 소개 글에 보면 이렇게 쓰여 있다. "재미가 있어야 의미도 있다는 소신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나의 소감은 '이 책은 굉장히 의미 있었다.'






<나이 먹고 체하면 약도 없지> 이 책은 어느 날 나이를 깨닫고 보니 오십이 되어 있었다는 작가의 나이 탐구 에세이다. 아이도 남편도 없는 딸 그리고 그저 '나'라는 존재로 이십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나는 어느덧 오십대가 되어 있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로 이 책을 읽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생각해보았다.



남들이 듣기에는 아줌마들은 왜 저렇게 동시에 다 떠들고 있냐고, 참 시끄럽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줌마들의 대화는 평등하고 기회가 있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말 그대로 인터랙티브한 커뮤니케이션이다. 아줌마의 수다는 그래서 즐겁다.

_ P.33. 그 매우 이름이 뭐더라






엄마와 친구처럼 지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며 함께 놀려도 다니며 지내지만 엄마의 모든 행동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왜 저런 거 까지 이야기 하는거지?' , '저렇게 시끌럽게 이야기 해야만 할까?'... 종종 의문을 던지게 하는 행동들이 있다. 내 성경상은 이해할 수 없다며 말하던 것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알아가고 있다. 특히 수다에 대한 부분을 재미있게 읽고 조금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상황이 내가 너무 잘 아는 친숙한 상황이라 빠르게 머리속으로 그려지고 그러한 이유들을 쉽게 풀어주어 이해가 빠르게 된다.







아빠도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이미 아빠였으므로 나는 아빠가 아닌 내 아빠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빠도 어린 소년이던 적이 있겠지. 앳된 청년이던 적도 있겠지.

_ P.89 <오십 대 고아의 진짜 외로움>








이 에세이를 읽으며 한바탕 눈물을 쏟는 구간도 있었다. 나의 엄마, 아빠가 되기 이전에 그들도 딸과 아들이었고 소녀, 소년이었고 젊은 청춘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엄마, 아빠인 시절만을 보았다. 그래서 가끔 그들도 아들과 딸이며 청년이었던 시절이 있고 엄마와 아빠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렇게 눈물 짓게 된다. 못난 딸의 미안함일까? 그 분들의 그 외로움은 내가 만져 줄 수 없기 때문일지도.






"자랑은 부모에게 하는 자랑이 최고다. 부모에게는 아무리 작은 일도 어떤 망설임, 걱정없이 순진무구하게 자랑할 수 있다. 마음 깇은 곳부터 순수하게 자랑스럽다. 나의 작은 성취를 백 배 천 배 튀겨서 자랑스러워해 주는 사람이 부모다." -p.94 <오십 대 고아의 진짜 외로움>






맞다. 나를 가장 자랑스러워 해주는 분들. 그분들의 자랑이 되고 싶어 뭐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여전하기 더 공감했고 나의 아빠와 엄마도 그럴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해도 힘들 수 있다. 힘들고 눈물 날 때도 있다.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것이다. 또는 좋아질 때까지 하거나.

_ P.156<그러잖아도 이미 운동하고 있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 나보다 먼저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모두가 처음 겪는 인생이다. 그래서 모두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을 했고 치열했고 또 지금 그들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고민들과 상황들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체크해 놓은 부분들이 많을 수 밖에 없던 것 같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나도 그 나이가 될 테니깐.







나는 '나이 먹은 나'에 대한 기대가 있다. '나이 먹은 내가 쓰는 글'에 대한 기대다. 숙련은 없을지라도 정년도 없으니까.

_ P. 229 <숙련은 없지만 정년도 없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레벨업하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레벨업에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무시 못할 경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속에도 언제나 스토리는 존재한다. 그 스토리는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일 지도 모른다. 나이 먹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 나의 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또 그 때에 나는 어떤 말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까하는 기대감이 생긴다.







내가 또 내 나이에 한 살을 더 얻은 새해가 시작된 지금.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나와 천천히 나이 먹고 싶은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 쌓아갈 나이들 속에, 이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좋은 에세이인 것 같다. 더불어 나와 같은 이십대의 청년들이라면 부모님을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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