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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 안락사..라는 단어들이
먼저 들어온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내겐 죽음은 먼 이야기라고 여겼지만 그렇지 않으며, 누군가를 하나둘
떠나 보내며 담담해진 줄 알았던 마음은 글자만으로도 다시 요동치는 걸 보며 책에서 어떤 감정들로 담겨있을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책에 시작 장면부터 장례식장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죽음, 이별과 마주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할머니는 “난 못해도 앞으로 오 년 안에, 나머지 싹 정리하고 개운하게 갈 거야. 마음 딱 먹었으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라는 폭탄선언을 하신다. 책의 배경은 10년 정도 뒤에 근미래의 대한민국을 다룬다. 그리고 함께 대두되는
문제는 할머니의 폭탄선언과 관련된 ‘안락사’이다. 폭탄 발언 후 안락사는 합법화되고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하신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현실적이다’ 느꼈다. 최근 드라마 ‘의사
요한’에서도 내 몸이 너무 고통스럽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좀 더 편하게 죽는 편은 어떨까
하며 안락사를 택하는 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아 그냥 지나갈 수만은 없는 문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의 소신은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떻게구나 짐작해본다.
p.136
“너희 애비처럼 내 새끼들하고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추고 허망하게
가지는 말자, 그러려면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를 잘해야 된다,
거기서 그런 다짐을 했다.”
그 누구도 죽음의 이별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때론 오랜 마음에
준비로 떠나는 이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떠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이는 후회로 남기로 한다. 더 사랑할 걸, 더 표현할 걸, 더
마주할 걸, 덜 투정부릴 걸… 이별에 시간을 알고 있다면
이런 후회들이 줄어들까? 조금이라도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다.
p.148
“다들 애 많이 썼다.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할머니의 눈이 감겼다.
할머니의 마지막 말,, 이 페이지에서 순간에 적막, 한참을 그 문장을 들여다본다. 다 알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먹먹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이 한 마디 정확히 남길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겠는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내 삶에 죽음은 어떠한 모습 일까.
p.130
다음 날 오전, 할머니 집으로 향하기 전에 나는 언니에게 할머니의
메시지를 전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평소 옷차림대로 편히, 가급적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기분으로 와주길 바랐다.
p.138
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