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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말할 때 - 법의학이 밝혀낸 삶의 마지막 순간들
클라아스 부쉬만 지음, 박은결 옮김 / 웨일북 / 2021년 11월
평점 :

인문 에세이 '죽은 자가 말할 때'
며칠 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법의학자들이 모여 그들의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법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커졌지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고, 직업으로서의 법의학분야는 아직도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방송에 출연한 법의학자들은 다들 자신의 직업에 대해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고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프로그램을 시청한지 얼마되지 않아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가 말할 때'의 저자 클라아스 부쉬만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직업교육으로 응급구조사와 제약회사 영업직을 경험했습니다. 이 후 응급의사가 되기 위해 마취전문의 과정을 밟았지만 법의학 실습 후 법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졸업 후 유럽 대표 병원인 베를린 샤리테 대학병원 법의학과에서 법의학자의 길을 시작했으며 15년간 3,000여 건의 시신을 부검하며
독일 대표 법의학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베를린에서 담당했던 사건 중 가장 기이하면서도 흥미롭고 비극적인 열 두개의 사건을 담았다고 합니다. 평소 트루 크라임 장르물을 즐겨보고 법의학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죽은 자가 말할 때' 이 책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독일의 법의학과 법의학자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거나 인상깊었던 내용을 공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매일 같이 덧없는 삶의 모습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하기 때문에 그리고 너무 많은 고통과 슬픔, 폭력을 경험하기 때문에 적어도 나 자신은 매우 행복하고 단단한 현실에 기반을 둔다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싶다."
저자는 법의학자로 매일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일은 일로써 수행하고, 자신의 삶은 그것과는 분리하여 죽음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잔상이 남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법의학자로서 일을 대하는 방식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가해자에 대한 개인적인 혐오감과 희생자에 대한 연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나의 소임을 다하려면 프로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가끔은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고 있다. 선입견을 품거나 편향적인 태도를 가진 법의학자는 희생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무고한 목숨이 희생되어야 다른 하나의 삶, 그것도 가해자의 삶이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은 씁쓸하고 안타깝다. 그럼에도 나는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해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법 제도이기 때문이다. 법의학은 그 제도의 일부이며, 분명하게 구분된 분야이다. 윤리적 판단은 내 몫이 아니다. 나는 다른 임무를 맡고 있다."
법의학자는 대부분 범죄와 연관된 부검을 하기 때문에 법정에 서는 일이 잦다고 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가 있다면 살아남은 가해자가 있죠.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능력 또한 법의학자가 가져야 할 자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소방관, 응급 의사, 경찰관, 응급구조사로서의 경험은 이 세상의 어떤 부검보다도 정신적 부담과 트라우마가 큰 일이다. 그들은 어떤 광경을 보게 될지, 어떤 상황에 부딪힐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사건 현장에 던져진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확실하게 행동하고 정확하게 구조 작업을 해야 한다. "아뇨, 괜찮습니다.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큰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법의학자는 물론 사건 현장, 처참한 피해자의 모습 등 일반인이라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매일 접하는 소방관, 응급 의사, 경찰관, 응급구조사들의 업무상 스트레스,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명감, 책임감 없이는 절대할 수 없고 저자의 말대로 존경받아 마땅한 직업입니다.
"법의학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부검 횟수가 적기는 하지만, 우리는 부검대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상태인지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원인 때문에 사망하고, 어떤 건강 상태를 지녔고, 어떤 심리적인 부담을 가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수많은 사건을 통해 법의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양상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법의학이라는 분야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죽음, 죽음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 등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신과 부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이유를 학술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CSI 효과'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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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시청자와 독자들은 적당하고 안전한 거리에서 섬뜩하고, 오싹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접하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이와 함께 대중들의 법의학에 대한 시선 또한 다행스럽게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지하에서 일하는 괴짜들이 아니라, 활발하게 소통하고 친밀한 분위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저자가 마주했던 가장 인상적이고 비극적인 12편의 삶에 관한 이야기 '죽은 자가 말할 때'에는 각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서술과 저자가 작성한 부검보고서 그리고 사건에 대한 법의학자로서 그의 견해가 담겨있습니다.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할 정도의 자세한 서술이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법의학에 관심 있는 분, 트루크라임 장르물을 좋아하는 분, 삶의 소중함에 대해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