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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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딸을 두고있는 나는 서른 한 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하자마자 혼인신고를 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기던 차에 덜컥 첫 아이를 가졌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지만 둘이었던 가족은 셋이 되고, 넷이 되었다.


결혼 전에 해본 적도 없는 집안 일과 육아의 모든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물론, 남편의 '도움'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은 있었다. 맞벌이를 하는데도 왜 내가 더 살림과 육아의 대부분을 도맡아 해야 하는 건지, 왜 그것을 다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인지 불합리하게 느껴졌으나 결국 내가 내린 답은 하나였다.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 거겠지."

돌이켜보면 모든 과정에 나 스스로의 자발적인 '선택'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누군가 강제로 시킨 것도 아니다. 그저 '다른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내가 밟고 있는 이 과정이 아주 정상적이라 여기고, 아무 의심없이 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써온 것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선량한 차별주의자> 저자(김지혜)의 신작이다. 이미 정해둔 가족 구성에 개인은 그저 끼워 맞춰져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이 사회의 제도를 저자는 '가족 각본'이라 칭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묻는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 책의 목차부터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이미 '정해진 역할'에 끼워맞춰져 불평등과 차별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나도 너무나 그러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야 깨달았다.

대표적으로 요약한 내용은 이러하다.

-며느리는 왜 꼭 여자여야 하는가? (며느리의 역할을 남자가 하면 왜 안 되며, 사위가 여자이면 무엇이 문제인가? 며느리와 사위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인가?)

-결혼=출산이라는 공식은 절대불변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결혼 밖에서의 출산은 차별받아야 하는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 정해진 성별에 따른 역할 규범은 왜 필요한가? (왜 가족에 아빠, 엄마가 있어야 하고 아빠=남자, 엄마=여자여야 하나? 아빠와 아빠, 엄마와 엄마가 있는 가정은 있어선 안되는 것인가)

-모두가 인정하는 이상적인 가정(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은 결국 '소득이 높아야' 가능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결혼과 가족제도는 가족간의 계층 세습을 낳는다.

-우리가 받아왔던 성교육은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을 위해 행해져 왔고 '결혼을 가능하게'하기 위한 교육이었다.

-저출산이 국가적 문제이고, 아이를 낳아 키우라고 권하지만 과연 이 사회는 내가 낳고 키우는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인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를 어떻게 믿고 아이를 낳을 것인가?)

저자는 쉴 틈없이 독자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묻고 있다.

나는 차별을 배제하고 공정과 평등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다른 사람의 삶을 쉽게 평가하지 말자고 다짐해왔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부분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다름을 인정하는 방식'은 소설이나 기사에 등장하는 표면적인 사실들을 마주하는 것일 뿐, 실제 현실 속에 '다른 삶'들이 등장했다면 어땠을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나의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있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많이 놀랐다.

책 속에서 저자는 상당히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제시한다. 동성커플, 혼외출산, 트렌스젠더의 출산과 같은 '다른 방식'도 누군가가 만들어가고 있는 그들 자신의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르다'는 인식에서 시작되는 차별, 혐오, 불평등은 우리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이다. 또한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라면 그 이유는 '인구'가 줄어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놀라고, 또 어떤 면에서는 속이 시원했으며, 그리고 조금은 나의 인식이 변화하는걸 느꼈다. 또한 내 딸들에게 '너희는 결혼 하지 말고 아이도 낳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라'라고 무의식중에 말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제는 고쳐 말해야겠다. "너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거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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